정지용의 시세계
- 최초 등록일
- 2007.08.10
- 최종 저작일
- 200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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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정지용의 시세계를 초기.중기.후기로 나누어 살펴본 레포트입니다.
목차
1. 정지용
2. 납북설과 월북설
3. 정지용의 초기시 (모더니즘-이미지즘)
4. 정지용의 중기시(유토피아 의식과 이상향 추구)
5. 정지용의 후기시 (동양적 정신의 자연시)
6. 정지용의 시세계
본문내용
2. 납북설과 월북설
휴전 후 서울에 지용이 나타나지 않자 그의 행적을 두고 온갖 소문과 음해성 말들이 난무했다. 그 핵심은 두 가지. 하나는 북의 붉은 치하에서 자수하러 갔다 체포됐고 이후 북으로 끌려가다 폭격을 맞아 죽었다는 주장, 다른 하나는 전쟁 전 월북했다 내려온 임화 등을 만나 친구의 의리를 배신할 수 없다는 논리에 눌려 자진 월북했다는 설이다. 정지용의 납북되기 전후 행적에 대해선 그 동안 갖가지 주장과 억측, 오해들이 엇갈려 왔다. 6ㆍ25 전쟁이 일어나기 얼마 전엔 ‘이북통신’이라는 주간지에 ‘지용월북’ 이라는 기사가 나와 스스로 출판사에 돌아다니며 월북 사실이 없음을 해명하기도 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게 사실이었던지 <이북통신> 10월호는 사고(社告)로 ‘본지 전월호 실은 정지용 월북 기사는 편집자의 착각으로 오보되었기에 정정함’이라고 내보냈다. 일부에선 월북 후 남파돼 선전활동을 했다는 주장도 있다. 정지용의 미스터리 행적은 1982년까지도 치열한 논쟁거리였다. 일본 추오(中央)대를 나와 한국문학을 전공해 동국대 대학원을 수료한 고노 에이지(鴻農映二) 가 그해 7월호 <현대문학>에 <정지용의 생애와 문학>으로 평론 추천 완료되면서 이념논쟁이 불붙었다. 고노 에이지는 평론에서 지용의 납북론을 강하게 폈다.
그런데 탐사보도 전문가인 한민성이 ‘고노 에이지에게 경고한다.’는 부제의 <추적 정지용>(갑자문화사, 1982년 9월)을 통해 “엄연한 사실을 거꾸로 기록하는 그 만용의 결과가 무엇인지 한번쯤 생각해 보았는가. 그것은 대한민국의 안전과 자유민의 생존에 가공할 해독인 것이다. 경고하노니, 양심이 있으면 음폐하고 조작한 사실을 정정하든지 공개 사과하라!”고 했다. 이 무렵 지용의 해금 얘기가 나왔다. 큰아들 구관(求寬) 씨 등 유족이 나타나 “아버지 지용은 1950년 7월 말에 자주 드나들던 설정식 등 2~3인의 젊은이들과 한참 얘기하다 잠시 다녀온다고 나간 후 소식이 끊어졌다”는 것을 근거로 월북설의 오류를 주장했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