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페라]로시니와 세빌리아의 이발사
- 최초 등록일
- 2006.06.17
- 최종 저작일
- 200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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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이탈리아 작곡가인 로시니에 대해서와
그의 대표적인 작품 세빌리아의 이발사에 대해서 작성한 레포트입니다
목차
1. 로시니(Gioacchino Antonio Rossini)
(1) 로시니의 일생
(2) 간단하게 정리한 로씨니 일대기
(3) 로시니와 관련된 일화들
2. 세빌리아의 이발사(barbiere di Siviglia)
(1) 세빌리아의 이발사 줄거리
본문내용
조악키노 로시니는 19세기 전반기의 가장 중요한 이탈리아의 오페라 작곡가이다. 그당시
사람들로 부터 최대의 작곡가로 불리워진 그는 자신이 만들어낸 척도로 다른 작곡가들의 업적
마저 측량하게 되었다. 주젭페 베르디가 나타나 처음으로 이탈리아 오페라계의 중심적 지위를
잃게 되지만 그 베르디 조차도 성숙기에 도달할 때까지 로시니는 능가하는 명성을 얻지 못한다. 그러나 그러한 업적에도 불구하고 로시니의 인간상, 예술가상은 지금도 알수 없는 점이
고 여러 곡해를 불러 일으키고 있다.
인간으로서의 로시니는 대게 게으름뱅이고 식도락가로서, 유명한 스테이크 요리`투르네도
시니 (쇠등심살 고기를 다른 고기사이에 넣어 구운것)`는 그에게서 이름 붙여졌을 정도이다.
그리고 떠벌이 인간으로서 프랑스의 `제 2제정 시대`의 거들먹 거리는 인간으로 흔히 묘사되
한다. 이것은 1823년 로시니가 오페라계에서 물러난 뒤에 쓰여진 믿어지지 않는 전기적 자
에서 나온 인간상인것 같다. 그의 현역시대의 창작 활동을 알기위해서는 오페라 상연에서
어진 사실과 젊었을 때의 지금까지 남아있는 편지 약간 이외에는 없다. 오늘날 손에 잡히는
자료의 대부분은 로시니가 은퇴 후 40년이 지나서, 파리에서 방문객에게 털어놓은 일화이거나
그렇지 않으면 묘사는 잘했으나 신빙성이 거의 없는 스탕달 전기 `로씨니의 생애`에 의지할 수
밖에 없다. 그가 어떻게 예술적 성숙에 이르렀는가, 각본가들과 어떻게 어울렸는가, 그리고
떠한 미학상의 신념을 갖고 있었는가에 관해서는 당시의 자료가 없다.
최근까지 우리들이 그린 로시니 상이라고 하는 것도 이와같이 삐뚤어진 것이었다. <세빌리
의 이발사(Il barbiere di Siviglia)>나 <라 체네렌톨라(La Cenerentola)> 와 같은 희가극의
걸작품이 너무도 뛰어나고 유명한데서도 마찬가지이다. 이 작품들은 레퍼터리에 끼어 들어
는 것이 당연하지만 18세기 `부파`양식에 속하는 작품 이기때문에 로시니를 부당하게도 과거에
속하게 하고 말았다. 그의 부파작품은 훌륭한 것이지만 역사적으로 볼 때 그는 `오페라 세리
(opera seria)`의 작곡가로써 중요하다.이 분야에서 그가 창조하고 완성한 새로운 방식은 어느
의미에서 그 후 50년, 그보다 더 오래 이탈리아 오페라 세계에 영향을 끼쳤다.그는 노래 스
일을 변화시켰고 연극적 소재를 바꾸었다.그는 또 오페라의 형식과 리듬에 생기를 불어넣었
며 음악이 드라마를 규정하여 틀을 꾸며 나가는 방법으로 새바람을 일으켰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