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학]삼국사기와 삼국유사
- 최초 등록일
- 2006.04.12
- 최종 저작일
- 2005.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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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한국사학사 시간에 발표한 발제문입니다.
삼국사기와 삼국유사를 비교한 것인데 어느 한쪽에 치우치지 않고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의 저술당시의 시대역사의식과 저자의 생애와 역사서술상의 태도 상호비교 즉 시대배경, 저자, 서술방법을 통해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의 내용을 알아보고 역사적 의의를 실었습니다.
목차
들어가기에 앞서
1.시대상황
2.저술목적
3.저자의 역사인식
4.체제의 성격
5.서술방법
6.사학사적 의의
본문내용
삼국사기와 삼국유사 비교
☞들어가기에 앞서
역사편찬은 이전 시대 역사를 정리하는 사업으로써, 유교적 왕도정치 구현의 문화적 기념물이다. 동시에 그것은 중앙집권 완성의 증거로써 왕실권위의 확립을 위한 산물이다.
이러한 점에서 삼국유사와 삼국사기가 무사히 후세에 전래될 수 있었던 것은 그 당시의 역사적 관점과 의식을 통한 검증을 통해 내려왔다 할 수 있을 것이다. 다시 말해 이 양자는 그 시대의 역사의식을 담고 있는 것이다. 또한 삼국사기와 삼국유사는 동시대(고려)에 저술되었지만 관찬과 사찬의 또 다른 행태로 서술되었으므로 역사서술상의 비교에 좋은 참고사항이 될 것이다. 그러므로 우선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의 저술당시의 시대역사의식과 저자의 생애와 역사서술상의 태도 상호비교 즉 시대배경, 저자, 서술방법을 통해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의 내용을 알아보고 역사적 의의를 알아보도록 한다.
1. 시대 상황
삼국사기는 묘청의 난을 토벌한 뒤 그 토벌의 지휘관이었던 김부식이 중심이 되어 편찬하였다. 묘청의 난으로 분열된 민심을 재수습하여 국왕 중심의 중앙 집권 체제를 강화하기 위해서였다. 왕명에 따라 김부식이 책임 편찬관이 되었으며, 김부식(1075-1151)은 당시 고령이었으므로, 나머지 10명의 편사관들이 주역이었을 것이다. 그렇지만 김부식은 사료 선택, 각권계획, 각 항목 서문, 인물 평가, 논찬에는 직접 관여하거나 해당 부분을 서술하였을 것이다. 따라서 삼국사기 편찬은 김부식의 주도로 이루어졌다고 볼수 있다. 인종 23년(1145) 삼국사기를 완성하는데, 이 책은 우리나라에서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사서이다.
삼국유사를 저술할 때의 시대 상황은 인종대와는 크게 다르다. 삼국유사를 저술한 일연은 몽고와의 전쟁을 몸소 겪었고, 전쟁을 불타버린 황룡사의 황량한 모습을 보면서 민족 현실에 가슴 아파하였다. 당시 불교계의 타락상을 직접 목격하기도 하고, 14세기 후반에는 충렬왕의 명령에 따라 청도 운문사를 중심으로 불교 개혁에도 앞장섰다. 이런 상황 속에서 일연은 당시 고려인들에게 민족적 자주 의식을 심어줄 필요성을 느끼고, 이에 따라 삼국유사를 저술한 것이다.
2. 저술목적
우선 삼국사기의 경우 당시 묘청의 난으로 분열된 민심의 재수습과 국왕중심의 중앙집권체제 강화, 유교정치의 재확립이 목표였던데 반해 삼국유사는 무신정변 이후의 혼란한 사회에 대한 자각과 반성으로 정신적 기준을 찾기 위한 과거의 전통 재인식을 목표로 하고 있다. 이렇게 적어두면 마치 두 책의 저술 목적이 비슷한 듯 싶다. 일단 혼란기에 처한 사회의 통합이 목표라는 점에서는 동일점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삼국사기는 그 방편으로 유교적인 방식을 택했고 삼국유사는 불교적이고 우리의 전통적인 것을 되찾자는 방식을 택하여 우리 고유의 설화나 신화등을 채록해 놓았다는 점이 큰 차이점이다.
참고 자료
<한국의 역사가와 역사학> 上卷 (조동걸, 한영우, 박 찬승 - 창비사)
<한국사의 역사인식> 上卷 (이우성)
<한국사학사> (신형식) 삼영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