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부식과 삼국사기
- 최초 등록일
- 2003.06.18
- 최종 저작일
- 200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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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 김부식의 생애 (저자소개)
1) 가계와 정계진출
2) 묘청의 난 진압
3) 삼국사기 편찬
2. 편찬 배경
3. 구성과 체재
4. 삼국사기의 특징(성격)
1) 본기에 나타난 역사서술 자세
2)지 열전에 나타난 역사의식
3) 논찬에 나타난 김부식 사관
5. 사기의 편찬 동기와 목적
6.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의 비교
1) 체재의 성격
2) 서술방법
3) 역사학적 의의
7. 역사적 가치와 그 의의(결론)
8. 참고문헌
본문내용
1) 가계와 정계진출
김부식은 신라 왕실의 후예로 신라가 망할 무렵 그의 증조부인 위영(魏英)이 태조에게 귀의하여 경주지방의 행정을 담당하는 주장(州長)에 임명되었다. 그뒤 김부식 4형제가 중앙관료로 진출할 때까지의 생활기반은 경주에 있었다. 그의 가문이 중앙정계에 진출하기 시작한 것은 아버지 근(覲)때부터였다. 그는 13, 14세 무렵에 아버지를 여의고 편모의 슬하에서 자랐으나, 4형제가 모두 과거에 합격하여 중앙관료로 진출할 수 있었다.
4형제가 모두 과거에 합격하였다 하여 그의 어머니는 훌륭한 어머니로 매년 정기적으로 임금이 내려주는 곡식을 받았다. 더구나 4형제 중 부식과 둘째형 부일(富佾), 동생 부철(富轍) 3형제는 당시 관직 중에서 가장 명예스러운 한림직(翰林職)을 맡아 남들의 부러움을샀고, 어머니 또한 포상되었으나 사양하여 받지 않았다.
1096년(숙종 1)에 과거에 급제하여 안서 대도호부(安西 大都護府)의 사록(司錄)과 참군사(參軍事)를 거쳐, 직한림(直翰林)에 발탁되었다. 이후 20여년 동안 한림원 등의 문한직(文翰職)에 종사하면서 자신의 학문을 발전시켰고, 한편으로 예종․인종에게 경사(經史)를 강(講)하는 일도 맡았다. 그는 자신이 공자․맹자의 학문을 종지로 받든다고 표방하였을 뿐만 아니라, 유교 윤리의 실천을 주장하였고 유교이념의 실현에 노력한 유학자였다.
참고 자료
참고문헌
신형식, 1980, 삼국사기 연구 , 서울;단국대 논문
신형식, 1981, 삼국사기 연구 , 서울;일조각
황천우, 1981, 三國史記조사보고서, 문화재단
이기백, 1976, 삼국사기론, 서울;문학과 지성
백미나, 1997, 삼국사기 열전의 서술방식 연구, 서울;경희대 논문
한영우, 조동걸, 박찬승 , 한국의 역사가와 역사학, 창비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