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답사보고서] 천주교회 답사기
- 최초 등록일
- 2005.05.20
- 최종 저작일
- 2005.05
- 3페이지/ 한컴오피스
- 가격 1,000원
소개글
명동성당 위주의 교회답사기입니다.
일제시대의 일들을 주로 썼습니다.
목차
Ⅰ. 서론
Ⅱ. 본론
1. 명동성당
2. 약현성당
3. 정동교회
Ⅲ. 결론
본문내용
Ⅱ. 본론
1. 명동성당
1)‘한일합병’ 이후 천주교회의 정교분리정책 시행
천주교회는 선교권을 보장받기 위해 통감부시기에는 정교 분리선교정책을 주장하였다. 이에 성속이원론적인 신앙 강조에 명동성당은 일제하 한국인들이 당면하였던 운동에 참여하기 어려웠다.
2)1930년대 명동성당의 전시총동원 협력
1937년 7월 중일전쟁을 시작으로 본격화된 대륙침략정책 이 추진되면서 일제의 한국 기독교 소멸정책이 한층 강화 되었다. 일제는 한국의 종교단체를 그들의 침략전쟁을 위 한 동원체제로 편성하고 인적. 물적으로 협력하게 만들었 다.
명동성당에서는 중일전쟁 발발 여드레만인 1937년 8월 15일의 성모승천축일에 오전과 오후 두 차례에 걸쳐 ‘국위선양 평화미사’를 거행하였다. 동시에 황군 위문금 수집이 이어졌다. 이어 그해 11월 1일 약현, 백동, 영등포성당과 함께 서울의 4개 천주교 성당 연합으로 제2차 국위선양 평화미사가 명동성당에서 거행되었다. 그런데 황군은 일제식민당국이 강화시키고 훈련시킨 제국주의 침략의 전위대였다. 그러므로 황군 우문행사는 제국주의 침략전쟁에 천주교회가 협력하는 결과를 초래하는 것이었다.
-1942년에는 ‘일본어 강습회’가 개최되었고, 1943년에는 징병제를 기념함과 동시에 황군의 무운장구를 기원하는 미사가 명동성당에서 거행되었다. 한국 천주교회는 한국청년들에게 징병제가 시행되자 황국신민으로서의 자격과 대우를 받게 되었으니 환영한다고 하였다.
참고 자료
문규현,「민족과 함께쓰는 한국천주교회사」, 빛두레, 1994.
최준식,「한국의 종교, 문화로 읽는다」, 사계절출판사, 1998.
민족운동사학회,「한국 독립운동과 종교활동」, 국학자료원, 2000.
윤선자,「한국근대사와 종교」,국학자료원, 2002.
정재식,「전통의 연속과 변화(도전받는 한국 종교와 사회), 아카넷, 20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