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친일파 인물
- 최초 등록일
- 2004.11.20
- 최종 저작일
- 200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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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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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Ⅰ. 서 론
Ⅱ. 본 론
1. 이병도
2. 신석호
3. 이선근
4. 장 면
5. 방응모
6. 이광수
7. 홍난파
8. 노덕술
9. 최린
10. 김활란
Ⅲ. 결 론
본문내용
흔히 한국현대사를 이해함에 있어 일제 잔재를 청산하지 못한 역사라고 한다. 이것은 분명 우리 시대의 부끄러움이자 수치다. 이완용, 송병준, 이광수, 최남선, 김활란 등 이들은 이름만 들어도 다 아는 인물들이다. 이들은 일제강점기 때 활동했던 정치인이요, 지식인이요, 예술가이요, 기업가이다. 이들은 바로 친일파이다. 일제강점기때 주름잡았던 이들이 해방후의 남한 사회에서도 맹활약을 하였다. 일제강점의 암울한 상황에서 나라를 팔아먹은 매국노이며 일제에 충성을 다하는 이들이 해방후 사회에서는 친일의 행적을 감추고 친미파 또는 애국자의 이름으로 활약했다는 것을 우리는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 이병도사관과 그 비판
`이병도사관`이란 명칭이 쓰인 것은 이병도가 우리 나라 국사학계의 독보적인 존재로 인정받던 1970년대 중반부터였다. 일제하 `진단학회` 활동성과를 기반으로 해방 후 국사편찬위원회를 비롯하여 대학에서의 후계 양성 등 국사학계에서는 독보적인 존재로 평가되던 이병도는 1960년 허정 과도정부 하에 문교장관 등을 지낸 바 있으며, 박정희 정권 하에서는 5·16민족상 외에도 대통령 표창까지 받는 등 국사학계에 미친 그의 공로가 대외에 알려졌다.
그러나 그의 일제하 `조선사편수회` 등의 활동은 거의 알려져 있지 않으며, 이병도사관의 뿌리가 일본의 식민사가들의 깊은 영향하에 성장해 왔다는 사실 역시 제대로 알려져 있지 않다. 이와 같은 사실은 이병도가 학계의 원로로 자리를 굳혀가던 시기인 1970년대 중반에 그의 식민사관에 대한 비판이 잡지에 공개되면서 본격적인 논의가 진행되었는데, 이를 계기로 당시 국사학계는 식민사관 논쟁에 휩쓸리게 된다. ...............................................
《 정 치 》
4. 장 면(張勉 1899∼1966) 가진 자의 편에 선 구도자
★ 생 애
1899년 8월 28일 인천 출생. 본관은 인동. 호는 운석(雲石). 1917년 수원고등농림학교를 졸업하고, 1919년 YMCA영어학교를 나와 미국으로 건너갔다. 1925년 맨해튼 가톨릭대학을 졸업하고 귀국, 가톨릭교 평양교구에서 활약하다가 서울 동성상업학교 교장에 취임, 8·15광복 때까지 근무하였다. 1946년 정계에 투신하여 민주의원·과도정부 입법의원 등을 역임하고 1948년 제헌국회의원에 당선되었다. 1949년 초대 주미대사가 되어 한미국교를 위하여 공헌하였다. 1950년 영국 포덤대학에서 법학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6·25전쟁 때는 주미대사로 있으면서 유엔과 미국의 지원을 얻어내는 데 크게 기여하였고, 1951년 국무총리가 되었다가 이듬해 사퇴하였다. ................................................
나는 앞에서 여러 측면에서 친일행각을 한 10명의 인물을 열거하였다. 민족의 역사에는 민족의 번영과 영광, 시련과 애환이 깃들어 있기에 올바른 역사와 정신을 심어주는 것은 민족의 장래를 결정하는 중대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일제의 <font color=aaaaff>..</font>
참고 자료
반민족문제연구소, 1993. 친일파 99인 1,2,3권. 돌배게, 287pp.
·반민족문제연구소, 1994. 청산하지 못한 역사 1,2,3권. 청년사, 352p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