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개글
"이완용연구의 재검토- 독립협회,아관파천,헤이그 특사를 중심으로"에 대한 내용입니다.
목차
Ⅰ. 머리말
Ⅱ. 관련 연구 분석
1. 1990년대 연구사-민족주의적 시각으로 본 이완용의 생애
2. 2000년대 연구사-이완용에 대한 연구 재검토
3. 2010년대 연구사-다각화된 시각으로 재구성한 당대의 시대상과 이완용
Ⅲ. 선행연구 성과의 정리 및 문제점 도출
Ⅳ. 맺음말
Ⅴ. 참고문헌
본문내용
최근 일년 간 일제강점기부터 한국 현대사까지, 현실과 맞닿은 역사를 배우며 흥미를 느꼈다. 역사에는 여러 방면이 있지만, 개인적으로 느낀 가장 큰 매력은 역사의 연속성이다. 오늘날 우리는 역사의 응어리로 이루어진 사회를 살아간다. 이를 토대로 생각했을 때 우리 사회에서 가장 예민한 ‘콤플렉스’는 무엇인가 하고 생각해보면 ‘친일파 청산 문제’가 아닐까 싶다.
친일파 청산 문제는 ‘한국 사회의 정의실현’ 여부의 논쟁으로 이어진다. 이 논쟁이 오늘날 한민족이라면 누구나 느끼는 ‘문제’로 작용하면서, -정작 친일파는 약 100여년 전 일제강점기의 존재임에도 불구하고-우리는 친일파 인물에 대한 우리의 편견이나 고정관념을 마치 확실한 명제와 같이 활용하곤 한다.
한국인이 가장 많이 사용하는 포털 사이트인 ‘네이버’에 이완용을 검색하면 “한말 을사5적의한 사람이며 일본에 나라를 팔아먹은 최악의 매국노로 불린다. 고종을 협박하여 을사조약과 서명을 주도했고 의정부를 내각으로 고친 후 내각총리대신이 되었다. 헤이그 특사사건 후 고종에게 책임을 추궁하여 물러날 것을 강요했고 순종을 즉위시켰다. 총리대신으로 일본과 한일합병조약을 체결했다. ” 는 짧은 요약문이 나온다. 연관검색어 또한 크게 다르지 않다. ‘이완용 후손’, ‘을사오적’, ‘친일파’, ‘이완용 아들’ 등 이완용을 친일파의 대명사로 단순하게 규정짓고 있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의 이완용에 대한 한줄평은 더욱 극단적이다. “고위관료 친일 반민족행위자” 라고 되어 있다. 수능 한국사필수 첫 세대로서, 고등학교 시절 줄곧 암기했던 이완용을 돌이켜보면 역시 ‘을사오적’의 한 명으로 단편적인 인물일 뿐이다.
그러나 실제로 이완용의 삶을 들여다보면 정말 그는 뼛속까지 일신의 안락을 위해 민족을 팔아먹은 매국노라고 할 수 있을까? 1904년 이전의 이완용 삶의 양상을 보면 꼭 그렇다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물론 오늘날의 관점에서 결과적으로 이완용이 친일반민족행위자임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친일파를 옹호하거나 이를 합리화하고자 하는 것은 아니다.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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