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성백제의 왕성은 어디인가
- 최초 등록일
- 2004.11.03
- 최종 저작일
- 200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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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삼국사기(보물 723호)에 따르면 한성은 기원전 18- 기원후 475, 웅진 475-538, 사비 538-660 에 백제의 수도였다.
삼국의 각 국은 수도 근처에 왕릉군을 갖는다. 신라 : 경주(월성)-대릉원, 백제 : 서울(위례성)-석촌동 고분, 공주(공산성)-송산리 고분, 부여(부소산성)-능산리 고분 이 그것이다. 물론 고구려에도 국내성과 평양성 부근에 고분군이 있다.
하남위례성 부근에 강남구 석촌동의 석총고분군. 몽촌토성과 그 위 700m에 풍납토성.
(그외에도 삼성동토성, 암사동토성, 구산토성 등 수도방위를 위한 작은 토성들이 있고 아래쪽의 춘궁동의 이성산성은 큰 규모이지만 가장 아래쪽 지층에서 3세기 백제의 축성이, 이후 고구려 다시 신라의 축성이 덧붙여지는 것이 확인 되는 것으로 보아 초기 백제 축성은 결국 이곳이 수도방어지였다고 추측 가능하다. 그러나 근방의 춘궁동 하남시 교산동 건물지는 흔치않은 대형의 막초석이 사용되어 왕성지로 볼 수도 있지만, 고려시대 대형사찰도 이런 것이 사용된 예가 빈번하고 발굴유물이 통일신라 이후 고려, 조선 것임을 볼 때 왕성으로 보기 어렵다. 더구나 객사 등의 금석문이 발견되는 것으로 보아 객사나 관청지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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