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사 정리(한권으로 읽는 조선왕조실록을 중심으로)
- 최초 등록일
- 2013.02.18
- 최종 저작일
- 200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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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태조 이성계부터 27대왕 순종까지의 조선사를 요약한 리포트입니다. 이 리포트를 제출하였던 학과목에서 A+의 학점을 수여받았습니다.
목차
제1대 태조실록
제2대 정종실록
제3대 태종실록
제4대 세종실록
제5대 문종실록
제6대 단종실록
제7대 세조실록
제8대 예종실록
제9대 성종실록
제10대 연산군일기
제11대 중종실록
제12대 인종실록
제13대 명종실록
제14대 선조실록
제15대 광해군일기
제16대 인조실록
제17대 효종실록
제18대 현종실록
제19대 숙종실록
제20대 경종실록
제21대 영조실록
22대 정조실록
23대 순조실록
24대 헌종실록
제25대 철종실록
제26대 고종실록
제27대 순종실록
본문내용
제1대 태조실록
이성계의 아버지인 이자춘은 본래 고려 출신이지만, 원의 관리로 지냈다. 원이 고려 출신의 이주민들에게 차별 정책을 실시하자 이에 회의를 품고 고려를 돕기로 다짐한다. 그 당시 고려의 왕이었던 공민왕이 반원정책을 실시하였다. 이에 이자춘은 아들 이성계와 함께 고려의 옛 땅을 회복하는데 도움을 주고, 개경으로 오게 된다. 그리고 삭방도만호 겸 병마사가 되게 된다. 이자춘이 1360년 병사하고, 이성계가 그의 적자로 아버지의 자리를 물려 받는다.
당시 고려 조정은 권문세족이라 하는 친원파 관리들이 하락세를 걷는 시기였다. 이는 공민왕의 반원정책과 원의 쇠퇴기 때문이다. 신흥사대부가 권문세족의 자리를 대신하게 된다. 신흥사대부는 무신정변 때부터 성장한 세력으로 유학을 공부한 중소지주, 향리 계층이 주를 이룬다. 신흥사대부는 권문세족과 반대로 반원파이다.
원나라의 쇠퇴기와 맞물려 명나라는 나라의 구색을 갖춰가며 고려에게 속국으로서 무리한 공물을 요구하게 된다. 이에 고려 정부는 크게 반발하였고, 최영을 중심으로 명의 전초 기지인 요동을 정벌하자는 주장이 나오게 된다. 이 당시 왕이었던 우왕은 최영의 의견을 받아들여 1388년 4월 최영을 팔도도통사로, 조민수를 좌군도통사로, 이성계를 우군도통사로 임명하고 요동 정벌을 감행한다. 이성계와 조민수가 이끄는 5만 대군이 위화도에 당도했을 무렵, 장마로 압록강 물이 불어나 더 이상 진군하지 못하였다. 이에 이성계는 요동성을 정벌 할 수 없다는 요동 정벌의 부당성을 주장하는 상소를 우왕에게 올린다. 그러나 우왕과 최영은 이러한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고 요동 정벌을 독촉하자, 이성계는 조민수와 의논 후 개경으로 회군한다. 최영과의 접전 끝에 승리하여, 최영을 유배시키고 우왕을 폐위하여 강화도로 보낸다. 그리고 창왕을 옹립한다. 그러나 창왕은 이듬해 11월 이성계 일파에 의해 폐위 당한다. 폐위의 이유는 창왕이 왕씨가 아닌 신돈의 아들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신종의 7세손 정창군 요창을 등극시킨다. 그가 바로 고려의 마지막 왕 공양왕이다.
공양왕은 왕이라지만 실제적 권력은 없고 허수아비였다.
참고 자료
박영규, 『한권으로 읽는 조선왕조실록』, 웅진지식하우스, 2009
국사 편찬 위원회, 『국사 국정 교과서』, 교육 인적 자원부
『두산백과사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