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만식
- 최초 등록일
- 2012.03.10
- 최종 저작일
- 201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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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소설 작가론 스터디 자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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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채만식(蔡萬植, 1902~1950)
호는 백릉(白菱), 채옹(菜翁). 1902년 6월 17일 전북 옥구에서 부친 채규섭의 막내아들로 태어났다. 1922년 3월 경성 중앙고보를 졸업하고 일본으로 건너가 와세다 대학 영문과에서 수학했다. 1923년 9월 도쿄 대지진으로 학업을 중단하고 귀국했다.
(ⅰ)1925년 단편 <세 길로>가 이광수의 추천으로 《조선문단》에 발표되면서 문단에 나왔다. 1925년 7월 동아일보 정치부 기자로 입사했으나 이듬해 10월 그만두었고, 1931년 개벽사 기자로 들어갔다가 1933년 조선일보사로 자리를 옮겼다. 초기 채만식은 기자로 활동하면서 작품을 발표했기 때문에 주로 단편들이 습작의 형태를 띠고 있다.
(ⅱ)1932년을 전후로 동반자적 성향의 작품을 발표하면서 문단적 지위가 확고해진다. 이 시기에 발표한 작품이 <레디메이드 인생>, <인텔리와 빈대떡> 등과 같은 풍자적인 작품이다. 특히 <레디메이드 인생>은 직업과 그 존재 이유로부터 소외된 지식인의 사회적 초상을 풍자와 냉소로 제시하고 있는 작품이다.
(ⅲ)1936년 초에는 창작 활동에 전념하기 위해 조선일보사를 그만 둔 뒤 형이 사는 개성으로 거처를 옮겼다. 개성에서 5년여 동안 살면서 《탁류》, 《태평천하》 등을 집필했다. 《탁류》는 여주인공 초봉이의 기구한 운명을 통해 세속적인 인정세태를 풍자한 그의 대표작이다. 1938년 3월 말경 독서회 사건으로 검거되었는데 조선문인보국회 가담을 조건으로 풀려나기도 했다. (ⅳ)(ⅴ)1942년 12월에는 이석훈, 이무영, 정인택, 정비석 등과 함께 만주 시찰을 다녀오기도 했으나 친일 행위에 적응하지 못하고 1945년 1월 고향으로 낙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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