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국권침탈과정
- 최초 등록일
- 2011.03.25
- 최종 저작일
- 201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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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일보의 국권침탈과정에 대해서 정한론을 시작으로 을사조약까지 과정을 작성 하였습니다.
목차
1. 정한론
2. 조선의 근대화의 시작
3. 청일전쟁
4. 러일전쟁
5. 을사조약 ~ 한일 병합
본문내용
1. 정한론
일본의 조선침략의 배경은 정한론(征韓論)을 주장하면서부터 시작된다. 일본은 막부정치를 종료하고 새로운 유신(維新) 정부가 들어섰다. 신정부는 왕정복고를 토고하기 위한 사절을 조선에 파견하기로 했다. 1869년 1월 일본에서 파견한 사절단은 부산항에 들어갔다. 하지만 그들이 지참했던 서계(書契)에 황실(皇室), 봉칙(奉勅) 등의 문장이 들어 있는 것이 문제가 되었다. 조선에서 ‘황’, ‘칙’은 종주국인 청나라 황제만이 사용할 수 있는 문자이다. 조선 감히 그것을 사용하여 조선에 들어오는 것은 일본이 조선을 예속하려는 야망을 가지고 있다는 증거로 보았다. 또 서명과 인장(印章)도 종래와 다른 것을 사용하고 있었는데, 이는 관례를 무시한 형식과 표현이었다. 당시 대원군이 집권하고 있던 조선정부는 끝내 서계 수리와 교섭을 거절하였다. 이와 같은 조선의 조치를 무례로 받아들인 기토 다카요시와 외무당국은 조선을 정벌해야한다는 정한론을 주장하였다. 1873년 일본 정부는 사이코 다카모리를 대사로 임명하여 조선 파견을 결정하였다. 그러나 구미 순방을 마치고 귀국한 이와쿠라 토모미는 이 결정을 부당하다 하고, 내치 우선을 주장하며 대사파견을 반대하였다. 결국은 이와쿠라의 주장이 승리하여 사이코 등의 정한파 다섯참의가 하야하게 되었다. 하지만 정한론은 잠시 수면 아래로 내려갔을 뿐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