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산중공업의 노사관계
- 최초 등록일
- 2009.06.18
- 최종 저작일
- 200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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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두산중공업의 2002년 노사갈등은 산별교섭을 위한 기본협약 체결을 둘러싼 노사간 이견으로 시작되었다. 하지만 노조의 파업이 장기화되면서 노사간의 물리적 충돌과 이에 따른 고소고발, 가압류, 손해배상청구 등으로 사태는 더욱 악화되어 갔다.
공기업이 민영화되면서 달라진 기업문화에서 빚어진 갈등은 산별교섭을 둘러싼 노동계와 재계의 대리전의 양상을 띠면서 더 격렬한 극한 대치양상으로 전개되었다. 사측이 민형사상 책임 추궁 및 대량 징계 등 원칙적인 대응을 보였고, 노조측도 정문봉쇄, 제품출하 저지 등 강경대응하면서 노사간 첨예한 힘겨루기가 계속됐다.
결국 장기간의 파업이 계속되고 회사측이 단협 일방해지 통보를 하는 등 벼랑끝 교섭 끝에 노조가 기존의 주장을 상당부분 철회하고 합의에 이르렀지만 노사갈등은 잠재돼 있는 상황이다.
두산중공업 파업은 16명에 이르는 해고자와 다수의 징계자, 가압류, 총 65억의 손배소송 등으로 심각한 후유증을 낳았고, 2003년 초반부터 배달호 조합원이 분신하는 사태까지 발생해 노사간의 팽팽한 대결은 계속되고 있다.
목차
1) 사건 개요
2) 노사관계 개요
① 사업장 노사 개요
② 민영화 이후 두산중공업 노사관계
3) 임단협 교섭과 파업의 전개과정
① 연초의 노동법개정 반대파업과 대량 징계
② 금속노조 산별교섭 관련 기본협약을 둘러싼 노사갈등
③ 노조의 정문봉쇄와 극한 대립
④ 지역중재단의 활동과 정상조업 재개
⑤ 정상조업 이후 징계, 가압류, 손배청구 등 쟁점화
⑥ 단협해지 위기 속에서 노조의 현안요구 포기로 노사합의
4) 두산중공업 임단협 평가와 과제
본문내용
1) 사건 개요
두산중공업의 2002년 노사갈등은 산별교섭을 위한 기본협약 체결을 둘러싼 노사간 이견으로 시작되었다. 하지만 노조의 파업이 장기화되면서 노사간의 물리적 충돌과 이에 따른 고소고발, 가압류, 손해배상청구 등으로 사태는 더욱 악화되어 갔다.
공기업이 민영화되면서 달라진 기업문화에서 빚어진 갈등은 산별교섭을 둘러싼 노동계와 재계의 대리전의 양상을 띠면서 더 격렬한 극한 대치양상으로 전개되었다. 사측이 민형사상 책임 추궁 및 대량 징계 등 원칙적인 대응을 보였고, 노조측도 정문봉쇄, 제품출하 저지 등 강경대응하면서 노사간 첨예한 힘겨루기가 계속됐다.
결국 장기간의 파업이 계속되고 회사측이 단협 일방해지 통보를 하는 등 벼랑끝 교섭 끝에 노조가 기존의 주장을 상당부분 철회하고 합의에 이르렀지만 노사갈등은 잠재돼 있는 상황이다.
두산중공업 파업은 16명에 이르는 해고자와 다수의 징계자, 가압류, 총 65억의 손배소송 등으로 심각한 후유증을 낳았고, 2003년 초반부터 배달호 조합원이 분신하는 사태까지 발생해 노사간의 팽팽한 대결은 계속되고 있다.
2) 노사관계 개요
① 사업장 노사 개요
두산중공업은 1962년 설립된 발전, 담수설비 제조업체로서 공기업이었던 한국중공업이 정부의 민영화 방침에 따라 2000년 12월12일 두산에 매각됨에 따라 민간기업으로 전환한 회사이다.
두산중공업은 민영화 이후 경쟁력과 효율성을 강화하면서 2001년부터 시멘트 등 한계사업을 정리 등 사업구조조정을 단행했다. 또한 인력 구조조정을 통해 매출액 대비 인건비 비중을 획기적으로 낮추고, 탄력적인 인력 시스템 체계를 갖추었다. 사업부제 및 팀제 도입과 연봉제 및 신인사평가제도 도입 등 경영 전반의 변화 프로그램을 진행해 왔다. 이 과정에서 간접부서 종사자가 직접생산부서로 전환배치되고 과장급 이상 무보직발령, 명예퇴직을 통해 비조합원 400여명, 조합원 700여명이 회사를 떠났다. 이밖에 사택 매각, 대학생 학자금 축소 등 공기업 시절의 사내복지제도가 축소되기도 했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