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 단재 신채호
- 최초 등록일
- 2001.12.09
- 최종 저작일
- 200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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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 자주와 개혁의 이중과제
2.생애와 항일 역정
3. 역사의식의 변화와 특징
1)역사발전론의 이해
2) 고대사 인식
3) 민중직접혁명론
4) 무정부주의론의 수용
4. 신체호에 대한 나의 생각
본문내용
단재 신채호는 1880년 11월 7일 충청남도 대덕군 산내면 어남리 도림마을에서 태어났다. 19세에 성균관에 입학하면서 서울생활을 시작하였고 반봉건, 반침략이 한국근대사의 당면 과제임을 자각한 그는 독립협회 활동에 참여하여 투옥되기도 하였으며, 조소앙등과 친일 매국노 성토문을 작성하고 반일시위를 주도하였다.
1905년 러일전쟁속에 황성신문의 논설기사로 입사 애국계몽운동을 전개 하였다. 그러나 입사직후 시일야방성대곡사건이 발생하고 일제가 황성신문을 무기정간 시킨후 대한매일신보의 논설기사가되어 구국 언론활동의 선도적 역할을 수행 1907년 4월에는 비밀결사 시민회의 조직에 참여 반일국권수호운동을 목적 논설활동을 전개하였다. 1911년 권업회에 참여하였고 '권업신문'의 주필로 활동하였다. 1915년 그는 이화영의 권고로 베이징으로 활동무대를 옮겨 이후 3.1운동 시기까지 체류하였다. 1919년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에 참여하기 위해 상하이로 가서 임시의정원 의원 및 전원위원회 위원장으로 활동하였다. 그는 임시대통령 선임에 반대했는데 이유는 이승만이 주창한 위임통치 때문이었다. 미국 및 국제연맹에 대한 한국주권의 위임 모색을 '제 2의 매국행위' 로 받아들였기 때문이었다. 그는 이승만과 임정을 용납할 수가 없었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