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사기와 삼국유사 김유신 비교
- 최초 등록일
- 2008.06.20
- 최종 저작일
- 200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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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삼국사기와 삼국유사 김유신 비교 자료 입니다.
삼국유사를 중심으로
원사료번역과 그에 따른 해석, 삼국사기와의 비교를 하였습니다.
목차
1.들어가는말
2. 『三國史記』「金庾信列傳」
3. 『三國遺事』에서의 金庾信關聯 內容
4. 맺음말
본문내용
有太宗之號 以僭天子之名 義在不忠 速改其號 新羅王上表曰 新羅雖小國 得聖臣金庾信 一統三國 故封爲太宗 帝見表 乃思儲貳時 有天唱空云 三十三天之一人降於新羅爲庾信 紀在於書 出視之 驚懼不已 更遣使許無改太宗之號”『三國遺事』 卷1, 太宗春秋公조.
⑧의 내용은, 당 태종이 김춘추의 묘호가 부당하다고 하여 고치도록 했다가 김유신이 33天의 한 사람으로 천상에서 하강한 인물임을 알고는 그의 위력을 두려워한 나머지 사신을 보내어 廟號를 고치지 않게 한 일화이다. 앞서 김유신 조에서는 김유신의 출생을 칠성의 정기를 타고났다거나 楸男의 환생이라고 했는데, 여기서는 다시 33천의 신이라고 하였다. 이러한 내용은 김유신의 삶을 불교적인 시각에서 해석하고 있는 것으로, 다른 문헌의 내용에 비해 『三國遺事』소재 내용이 지니는 특징적인 면이라고 할 수 있다. 『三國史記』「本紀」신문왕조에도 위와 같은 기사가 있지만, 김유신 전생에 대한 언급은 없다. 다만 당에서 김춘추의 묘호를 그대로 인정한 것으로 되어 있다는 차이점이 있다.
⑨萬波息笛조, “…明年壬午五月朔,(一本云,天授元年.誤矣.)海官波珍口食朴夙淸秦曰.東海中有小山.浮來向感恩寺.隨波往來.王異之.命日官金春質(一作春日)占之.曰,聖考今爲海龍.鎭護三韓.抑又金公庾信乃三十三天之一子.今降爲大臣.二聖同德.欲出守成之寶.若陛下行幸海邊.必得無價大寶.王喜.以其月七日,駕幸利見臺.望其山.遺使審之.山勢如龜頭.上有一竿竹.晝爲二,夜合一.(一云,山亦晝夜開合如竹.)使來奏之…”『三國遺事』 卷2, 紀異5, 萬波息笛조.
⑨의 내용은, 神文王이 東海 중에 신이 있어 감은사를 왕래한다는 말을 듣고 점을 치게 했더니 김유신이 33천의 아들로서 신라에 내려와 大臣이 되었다고 하고, 또 東海 龍이 검은 옥대를 바치면서 先王은 바다의 용이 되고 庾信은 다시 天神이 되었다는 것이다. 이 내용 역시 바로 위의 설화와 같이 김유신을 33천의
참고 자료
김부식, 이강래역, 『삼국사기』, 한길사, 1998
일연, 김원중 역, 『삼국유사』, 을유문화사, 2002
박성주, 김내민, 「金庾信關聯 文獻史料와 說話의 比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