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후감]플로베르와 보바리 부인
- 최초 등록일
- 2007.01.22
- 최종 저작일
- 200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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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19세기 프랑스의 사실주의 문학을 꽃피운 플로베르에 대해 알아보고 그의 작품 보바리 부인에 집중적으로 다가간 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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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19세기 프랑스의 사실주의 문학을 꽃피운 플로베르(G. Flaubert)는 문학사가에 따라서는 자연주의 경향이 강한 작가로 인식되기도 한다. 플로베르는 1821년 루앙의 l`Hotel-Dieu(시립병원)에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가 이 병원의 외과과장을 지낸 학식과 성품이 고매한 인격자였으며 의사로서 덕망이 높은 사람이었다. 어머니는 노르망디의 부르조아 집안 출신으로, 어머니로부터 플로베르는 노르망디인 특유의 낭만적인 기질과 몽상적인 소인을 물려받고, 의사였던 아버지로부터는 치밀한 관찰력과 냉철한 판단력을 배웠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그의 유전적 환경이 그가 작가가 되는 형성과정에 많은 영향을 주었다고 볼 수 있다. 태어나서 청소년기를 거치기까지 루앙 시립병원의 관사에서 살아 훌륭한 외과의사였던 아버지의 여향을 당연히 많이 받았다고 보여지며, [보바리 부인]에서 샤를르와 대조적으로 위대한 의사로 등장하는 리비에르 박사가 아마도 그 모델이 작가 자신의 아버지일 것이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아버지의 직업을 통해서 비정하고 냉철한 세계와 가난한 처지의 입원환자들의 고통, 시체의 허무를 체험하기도 하여 인생의 어두운 면을 보며 자라기도 하였다.
플로베르는 다른 작가들에 비해서는 풍족한 환경에서 또 정상적인 부모와 가족관계 속에서 자라나는 과정에서는 아무런 부자유스러움 없이 일찍부터 문학을 탐닉하며 자라났다. 특히 세르반테스와 샤또브리앙등의 작품을 애독했으며 이미 12세 때부터 시와 소설, 희곡 등을 쓰기 시작했다.
15세 되던해에 루앙 북쪽의 해변 휴양도시 Trouville에서 우연히 만나 일상적인 몇마디만을 나누었던 음악악보 편집자의 아내에게 연정을 품게되고, 그 후 차마 말로 표현하지 못했던 열정을 그 부인이 남편과 사별한 뒤에 편지로 고백하게 된다. 결국 그녀는 플로베르의 많은 작품 집필에 영감을 불러일으키는 여신과도 같았으며, 감정교육에서 Marie Arnoux라는 모습으로 이상화되어 나타난다.
18세 되던 해에 부당하게 퇴교를 당한 급우를 구제하는 운동에 앞장섰다가 자신도 퇴교를 당하여 집에서 바깔로레아를 준비하여 이듬해 합격하였다. 대학 진학을 위하여 빠리로 가서 법학부에 등록을 하였지만 문학적 성향을 지니고 있는 플로베르가 법학 관련 강의들에 별 흥미를 느끼지 못하였음은 당연한 일일 것이다. 이 시기에 그는 낭만주의 거장들이 자주 출입하던 조각가 프라디의 집에서 당대의 거장 빅토르 위고를 만나 그를 무척 따르게 되었는데 그것은 위고가 제정에 반대하는 인물이었기 때문이기도 하였다. 그러나 위고의 [레미제라블]을 읽고 난 후 무척이나 실망하였다고 하는데 그 까닭은 위고가 카돌릭 사회주의를 옹호하려는 목적으로 레미제라블을 썼다고 믿어졌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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