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학]광개토대왕릉비문 해석
- 최초 등록일
- 2006.09.24
- 최종 저작일
- 2005.01
- 18페이지/ 한컴오피스
- 가격 2,500원
소개글
2일 꼬박세워 고생하면서 작성한 광개토대왕릉비문의 해석 논쟁에 관한 레포트입니다.
목차
§1. 머리말 : 광개토대왕비(廣開土大王碑)의 역사적 의의
1. 들어가는 말
2. 광개토대왕은 누구인가
3. 광개토대왕비는 어떤 비인가 - 개관
§2. 비문의 내용 및 논쟁부분
1. 광개토대왕비 원문
2. 원문의 해석
3. 논쟁부분
→ ‘渡海破’ 의 주어가 누구인가?
(1) 문장 전체의 주어를 ‘倭’로 볼 경우 ▶ 일본학계의 입장
(2) 문장 전체의 주어를 ‘高句麗’로 볼 경우 ▶ 한국학계의 입장
(3) `渡海破` 의 주어는 高句麗, 그 뒤의 주어는 百濟로 볼 경우
▶ ‘정인보’ 의 주장
(4) 비문 변조설 ▶ 재일 사학자 ‘이진희’의 주장
(5) 비문 변조 주장에 대해 반박 ▶중국 ‘왕건군’의 주장
(6) 그 밖의 견해들
4. 영락연호란?
§3. 맺음말 : 광개토대왕릉비의 연구가 나아가야 할 방향
본문내용
1. 들어가는 말
<집안시의 광개토대왕비>
광개토왕릉비는 고구려 제 19대왕 광개토대왕의 재위 22년간(391~412)의 업적을 기리기 위하여 그 아들 장수왕이 즉위 2년(414년)에 고구려 국내성(中國 吉林省 集安市 太王鄕 太王村)에 세운 거대한 기념비다. 이 비는 당시 동아시아의 국제정세와 고구려의 위치를 상징적으로 대변하는 것으로 그 역사적 가치는 가히 엄청나다.
특히 광개토대왕의 업적을 기록한 비문의 내용은 당시 동아시아의 국제정세를 이해하는데 매우 중요하다. 그러나 오랜 세월이 지나면서 글자들이 많이 떨어져 나가고 흐려져 판독에 적지 않은 어려움이 있다. 게다가 일제가 비문의 일부 내용을 조작․왜곡하는 바람에 역사적 사실들이 엉뚱한 방향으로 연구되어 왔다. 그 해독은 碑가 1990년 무렵 재발견된 이래 100년 넘는 오늘날까지도 여전히 심각하게 남아있다.
최근에는 깊은 역사적 인식과 연구가 요구되는 이 비문을 마치 일회성 깜짝쇼의 대상으로 삼는 어처구니없는 형태까지 버젓이 자행되고 있어 개탄을 금할 수 없다. 모두가 일제가 저질러 놓은 조작․왜곡의 악영향이 아닌가 한다.
3. 논쟁부분
‘능비’와 ‘비문’을 둘러싼 연구는 대체로 세 방면으로 정리가 될 수 있다. 즉 (1) 辛卯年조에 초점을 맞춘 연구 (2) 비문변조와 관련된 연구 (3) 고구려사의 전개과정에서 비문의 의의를 찾고 활용하려는 연구가 그것이다. 박성봉,「광개토호태왕비의 성격과 연구상 문제점」(광개토대왕릉비 탁본특별전 학술세미나), 국립문화재연구소, 1998.5.18.
이러한 연구 중에서 가장 문제가 되는 부분이 이른바 辛卯年조에 대한 해석이라 할 수 있다.
<광개토왕릉비문>의 내용은 크게 보아 세 단락으로 나뉘어지는데, 앞 단락에는 고구려 시조인 東明王의 神話가 나오고, 가운데 단락에는 광개토왕 재위 기간 중의 업적들이 나열되었으며, 뒤의 단락에는 왕릉을 지키는 守墓人烟戶의 명세와 규정이 적혀 있다.
참고 자료
□ 국립문화재연구소, 『光開土大王陵碑 拓本圖錄』(국내소장본), 1996.
□ 손영종,『광개토왕릉비문 연구』, 도서출판 중심, 2001.
□ 고구려연구회,『광개토호태왕비 연구 100년 ― 고구려연구 제2집』, 학연문화사, 1996.
□ 연민수,『고대한일관계사』, 도서출판 혜안, 1998.
□ 이진희 著, 이기동 譯《광개토대왕릉비의 탐구》, 일조각,1982.
□ 왕건군 著, 임동석 譯《광개토대왕비 연구》, 역민사,1985.
□ 두산대백과사전
□ 브리태니커백과사전 <http://deluxe.britannica.co.kr/bol/topic.asp?article_id=b02g1230b>
□ kbs 역사스폐셜
□ http://www.naver.com 의 뉴스검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