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나일본부설(임나일본부) 형성, 임나일본부설(임나일본부) 견해, 임나일본부설(임나일본부)과 일본서기, 임나일본부설(임나일본부)과 가야사, 임나일본부설(임나일본부)과 광개토대왕릉비
- 최초 등록일
- 2013.07.24
- 최종 저작일
- 2013.07
- 10페이지/ 한컴오피스
- 가격 5,000원
목차
Ⅰ. 서론
Ⅱ. 임나일본부설(임나일본부)의 형성
Ⅲ. 임나일본부설(임나일본부)의 견해
1. 식민사학자의 통설 : 말송보화 ꡔ임나흥망사ꡕ
2. 수정론(지배영역 및 기간, 지배성격의 제한성을 중심으로 수정시도)
1) 산미행구
2) 대산성일
3) 영목영부
3. 가야지역 왜계집단의 자치기구설
4. 외교교섭담당의 사신단 내지 외교기관설
1) 제전정행
2) 오전상
3) 귀두청명
5. 교역기관설
1) 이병도
2) 길전정
6. 일본열도내 분국설
1) 김석형
2) 대마도 위치설
7. 백제파견 군사령부설
1) 천관우
2) 김현구
8. 안라왜신관설
Ⅳ. 임나일본부설(임나일본부)과 일본서기
Ⅴ. 임나일본부설(임나일본부)과 가야사
Ⅵ. 임나일본부설(임나일본부)과 광개토대왕릉비
Ⅶ. 결론
참고문헌
본문내용
Ⅱ. 임나일본부설(임나일본부)의 형성
일본 근대화의 기점인 명치(明治) 초기 분출되었던 정한론은 선린우호관계가 지속되었던 강호시대와는 다른 불행한 근대 한일관계의 서곡이며 오늘날 일본인 속에 정착하고 있는 왜곡된 한국관의 연원이라고 할 수 있다. 일본서기는 일본국가의 기원과 발전을 기록한 사서이지만 그 속에는 한반도에 관한 기사가 풍부하게 포함되어있다. 그것은 고대 일본이 한반도와는 관계가 밀접하고 한반도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었던 것을 나타낸다. 그러나 그 기사 속에는 의도적으로 만들어진 부분이 적지 않게 포함되어 있다. 일본서기에 표현된 조선관 중 후대의 일본인의식 속에 살아 숨쉬고 조선과의 긴장관계가 일어날 때마다 상기되었던 설화가 바로 신공황후의 삼한정벌설로, 신탁을 받은 황후가 신의 가호 아래 한반도의 삼국을 정복했다고 하여 한반도 침략의 정당성을 강조하고 삼국으로부터의 조공과 일본으로의 종속관계의 성립을 설명한 것인데 이 기사가 사실 이 아닌 설화에 그친다는 것은 이미 일본측 여러 학자에 의해서도 지적되고 있으나, 문제는 역사적 사실이 아닌 이 허구의 설화가 역사적 사실로서 둔갑하여 이후로 조선에 대해 침략성을 지닌 집권자와 왜곡된 시각을 가진 지식인들에 의해 끊임없이 인용되었다는 점이다.
<중 략>
일반적으로 ‘역사’라 불리는 것에는 엄밀하게 말해서 두 개의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 추상적 실재로서의 역사(과거의 현실 전체)가 그 하나이고 또 하나는 구체적으로 인식된 역사(알려진 과거의 사실 또는 ‘역사적 사실’)이다. 이 가운데 우리가 실제로 접할 수 있는 것은 물론 후자이다. 역사는 말하자면 ‘이중성’을 지니는 바, 어떤 형태로든 ‘기록’되지 않은 과거는 ‘역사’가 아니라는 점에 유념하지 않으면 안돼는 것이다.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해서 ‘역사’를 인식할 수 있는가? 다시 말해서 과거의 수많은 사실들 가운데 ‘역사적 사실’을 파악해 내는 일은 어떻게 가능한가? 여기서 카는 ‘역사가’라는 존재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과거의 사실들은 스스로 말할 수 없으며, 반드시 역사가의 손을 거쳐 그 존재를 우리에게 알리는 것이다.
참고 자료
김지욱(2008), 일본 정한론의 실상과 그 영향, 성우안보연구소
송영걸(2004), 정한론 소고 :일본의 한국관을 중심으로, 한양대학교 일본학회
신혜란(2000), 탈냉전기 일본의 국제적 역할의 연원에 대한 일고찰 : 정한론을 중심으로, 가톨릭대학교
이기용(1998), 정한론 비판 - 전산정중의 정한평론을 중심으로, 한일관계사학회
유철종(1978), 독도문제와 정한론의 정치사적 고찰, 전북대학교 사회과학연구소
홍순호(1994), 정한론의 국제관계사적 배경, 한국외교협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