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교육사]근대학교의 설립배경과 유형
- 최초 등록일
- 2006.06.19
- 최종 저작일
- 200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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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근대학교의 설립배경과 유형
목차
1. 무비자강(武備自彊)과 개방정책 : 신식 관립학교의 등장
2. 개신교 수용과 신식학교의 등장
3. 현대적 공교육체제의 성립
4. 결론
본문내용
1. 무비자강(武備自彊)과 개방정책 : 신식 관립학교의 등장
19세기 후반 동북아의 전통적 국제질서에 큰 동요가 일어났다. 오랫동안 내치와 외정에 독자적인 권한을 행사하여 온 조선이 주변국가의 그 같은 개방정책에 맹목적으로 추종치 않자 열국과 일본은 무력을 앞세워 조선의 전통적 외교정치에 도전하였다. 이양선이 조선 해역에 자주 출몰하였으며, 프랑스와 미국은 조선이 통상 요구에 불응하자 강화도에 침략하였다.
1881년 초 종래 없던 국가기구인 통리기무아문이 창설되었다. 아문은 1870년대 말부터 추진해 온 무비자강정책과 열국과의 외교교섭을 전담하기 위하여 설치된 국가기구이다. 일본은 1874년 대만에 출병하는 침대(侵臺)사건을 일으키고, 이어 강화도를 침략한 후 1876년 조선과 강화조약을 체결하였으며, 1879년에는 유구국을 무력으로 병합하였다. 1880년 김홍집을 수장으로 하는 사행은 양국간의 당면 외교 분쟁을 해결하고자 한 것으로, 이를 통해 실질적인 외교 교섭이 이루어졌다. 김홍집은 일본 주재 청의 외교관 황준헌이 저술한 <조선책략>을 가지고 귀국하였다. <조선책략>은 청의 동문관에서의 서양어 학습과 천진, 상해 등지에 있는 군사, 산업 시설에 유학생을 파견할 것을 권한 것으로, 오래 전부터 이홍장이 추진한 권고와 그 내용이 일치된다. 개방정책이 가시화 되자 조선 내부에서는 이에 대한 찬반 논의가 치열하게 진행되었다. <조선책략>의 내용에 대해 위정척사를 앞세워 반외세 태도를 견지한 영남지방 유학자들은 만인소를 통해 종래 폐관자수 정책의 고수를 상주하기도 하였다. 충주목 유학 지석영은 서양에 대한 개방의 필요성을 주창하고 견문을 넓히기 위하여 <조선책략>, <만국공법>, <진법전기>, <박물신편> 등의 한역서와 김옥균의 <기화근사>, 안종수의 <농정신편> 등의 저서를 널리 읽히고, 신식 병기를 구입할 것을 상주하였다. 이 중 국내 저서는 일본에 파송된 사신들이 서양 근대 문물을 소개하기 위해 편찬된 것이었다. 국왕은 전통적 신분제를 완화하여, 양반의 상업활동을 허용하는 한편, 평민이 전통적 교육기관인 성균관과 향교에 입학할 수 있도록 하였으며 능력에 따라 인재를 선발하겠다는 방침을 선포하였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