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 틸리히 연구
- 최초 등록일
- 2023.04.01
- 최종 저작일
- 202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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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 신학적 특징
1.1. 대답하는 신학
1.2. 상관관계의 방법
1.3. 틸리히의 상징이론과 궁극적 실재와 관심
1.4. 틸리히의 신론과 그리스도론
2. 참고문헌
본문내용
폴 틸리히는 1886년 8월 20일 독일 브란덴베르그 슈타르체델에서 루터교 목사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는 베를린과 튀빙겐 그리고 할레 대학에서 철학을 전공했다. 특히 마르틴 켈러와의 만남은 그에게 큰 영향을 미쳤는데, 특히 마르틴 켈러(Martin Kähler)의 “신앙에 대한 칭의”의 이해 즉, 하나님의 은혜는 의심하는 사람들과 불신자들에게까지 적용된다는 개념이 바로 그것이다. 틸리히는 훗날 이 해석 덕택에 자신이 계속 신학자로 남을 수 있었다고 고백한다. 그러나 그의 주된 연구 주제는 셸링(Friedrich Wilhelm Joseph von Schelling)이었다. 셸링은 19세기 독일의 관념론이자, 낭만주의 철학자로서, 그 역시도 루터교 목사의 아들이었다. 셸링이 순수이성과 실천이성을 구분한 칸트에 반대한 것처럼, 칸틸리히 역시 칸트의 자연과 도덕의 이분법을 수용하여 자신의 신학을 전개한 리츨의 방법론에 반대하였다. 틸리히는 1910년 브레슬라우에서 철학박사 학위를, 1912년 할레에서 목회학박사 학위를 취득하였는데, 이는 모두 셸링에 대한 연구였다. 그러므로 틸리히에게 있어서 셸링은 그의 사상적인 발전에 매우 크고도 지속적인 영향을 주었다고 할 수 있다.
그는 1912년 목사안수를 받고 부목사로 활동하였다. 그리고 1914년 제1차 세계대전이 일어나게 되었고 이 전쟁에서 그는 군목으로 참전하게 되었다. 그는 약 4년간 군목생활을 하였으며, 이 과정에서 그는 수많은 전쟁의 참상과 아픔, 그리고 그 과정에서 사망자들의 장례를 수 백건이나 집례하게 되면서 죽음에 대한 근원적인 공포와 불안이 어떤 것인지 체험하게 되었다. 전쟁을 겪으며 그는 “전통적인 군주주의자(모나키스트)에서 종교사회주의자로, 기독교 신자에서 문화적 염세주의자로, 금욕적이며 청교도적 소년에서 야성적인 사나이로 변모했다”고 고백한다.
참고 자료
폴 틸리히, 남성민 역, 『조직신학 1』 (서울: 새물결플러스, 2021)
폴 틸리히, 남성민 역, 『성서 종교와 궁극적 실재 탐구: 종교와 철학 관계』 (서울: 비아, 2021)
폴 틸리히, 차성구 역, 『존재의 용기』 (서울: 예영 커뮤니케이션, 2004)
목창균, 『현대신학논쟁』 (서울: 도서출판 두란노, 1995)
스탠리 그랜츠, 로저 올슨 저, 신재구 역, 『20세기 신학』 (서울: 한국기독학생회출판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