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가의 정치 철학
- 최초 등록일
- 2021.11.08
- 최종 저작일
- 202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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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법가의 정치 철학"에 대한 내용입니다.
목차
1. 법가의 성격
2. 한비자의 생애
3. 한비의 사상
4. 한비에 대한 평가
본문내용
1. 법가의 성격
법가(法家)는 제자백가 중에서도 가장 늦게 성립했기에 기존의 여러 사상을 종합한 내용을 담고 있다. 또한 법가의 유래를 관자(管子)에서 찾는 설도 있는데, 관자 역시 제나라 직하학파의 온갖 잡설이 섞여 있기에 기존 백가(百家)의 설에서 고루 영향을 받았다고도 할 수 있다. 그러나 그 본류는 전국시대에 와서 상앙(商鞅)의 법(法), 신불해(申不害)의 술(術), 신도(愼到)의 세(勢) 등의 사상에 있고, 이것을 한비(韓非)가 집대성한 것이다. 따라서 한비의 사상을 중심으로 법가의 정치철학을 살펴보고자 한다.
→ 상앙의 법(法)은 이른바 변법(變法)이라 한다. 시대가 변하고 상황이 바뀜에 따라 모든 문화나 제도도 또한 바뀌는 법이며 고정불변한 신법(神法)이란 있을 수 없다. 법고(法古)・고례(古禮)에 치우친 상고주의(尙古主義)에 대한 비판에서 등장한 것이다. 술(術)이란 군주가 신하를 다루는 기술을 말한다. 한편 법과 술이 제대로 시행되기 위해서는 군주의 권세가 있어야 가능하다. 이것이 세(勢)다.
2. 한비자의 생애
한비자(韓非子, 기원전 약 280∼233)는 성이 한(韓)이요, 이름은 비(非)이다. 그는 기원전 3세기 초에 한왕(韓王) 안(安)의 서공자(庶公子)로 태어났다. 한비는 선천적으로 말을 더듬는 장애가 있었다. 그러나 그의 문장은 예리하여 오직 문장에 의해서만 자신의 사상을 표현하였다고 한다.
전국7웅 중에서도 작고 약한 나라였던 한(韓)은 특히 강국 진(秦)과 국경을 마주하고 있었기에 국방의 염려가 끊이질 않았다. 이런 염려를 늘 개탄하던 한비는 부국강병을 위해서 ‘국가는 반드시 형벌을 엄중하게 하여 법으로써 다스리고 쓸모없는 무리를 제거하여야 한다’고 간언하였으나 한왕(韓王)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