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레퓌스 사건과 프랑스의 유대인 인권
- 최초 등록일
- 2021.07.26
- 최종 저작일
- 20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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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드레퓌스 사건과 프랑스의 유대인 인권"에 대한 내용입니다.
목차
Ⅰ. 서론
Ⅱ. 본론
1. 사회적 배경
2. 드레퓌스 사건
3. 사건 이후의 반유대주의
Ⅲ. 결론
본문내용
Ⅰ. 서론
20세기 서양 사회에서 인권과 관련이 있는 국가는 여럿이 있지만 그중에서 프랑스를 제외하고 인권을 논할 수는 없을 것이다. 드레퓌스 사건(Dreyfus affair) 자체는 19세기 말에 발생했지만 1894년부터 1906년 최고재판소에 의해 드레퓌스의 무죄가 선고되기까지 계속되었고, 그 여파는 20세기에 적지 않은 영향을 끼쳤다. 본고에서는 다른 나라에 비해 여러 차례 혁명을 겪었으며, 자유, 평등, 우애를 주장했던 프랑스 제3공화국에서 유대인이라는 이유만으로 국가가 나서서 무고한 피해자를 만들고, 프랑스 사회를 분열시킨 간첩 조작 사건이 어떠한 배경 속에서 발생했는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또한, 점점 드레퓌스의 무죄 증명과 석방이라는 개인 차원을 넘어 정치적인 문제로 확대된 드레퓌스 사건의 대략적인 전개 과정을 살피고자 한다. 이후 드레퓌스 사건 이후 프랑스 제3공화국에서 드레퓌스 사건에 유대인 비밀결사의 배후 조종이 있었다는 식의 유대인 음모론이 적극적으로 수용되는 과정과 그 결과 벨 디브 대규모 체포 사건으로 약 1만 3천 명의 유대인이 검거되어 학살당하기까지의 일련적인 흐름 속에서 20세기의 프랑스 사회를 개인과 집단을 모두 포함하는 인권의 관점으로 평가하고자 한다.
Ⅱ. 본론
1. 사회적 배경
드레퓌스 사건이 발생한 1894년의 프랑스 제3공화국을 둘러싼 사회적 배경은 복잡한 편이었다. 1866년 보-오 전쟁에서 승리하면서 오스트리아 제국을 패배시키고 독일 통일의 기치를 내걸고 있던 프로이센 왕국을 상대로 1870년 나폴레옹 3세(Napoleon III)의 선전포고로 시작된 보-불 전쟁에서 프랑스는 참패를 당했다. 보-불 전쟁의 결과 프랑스는 프랑크푸르트 조약(Treaty of Frankfurt)을 통해 50억 프랑에 달하는 배상금을 지불하고, 메스(Metz)와 스트라스부르(Strasbourg)로 대표되는 알자스-로렌(Alsace-Lorraine) 지방을 상실했다.
참고 자료
저서
김희보, 『비밀결사의 세계사』, 가람기획, 2009
박재선, 『100명의 특별한 유대인』, 메디치미디어, 2013
니콜라스 할라스, 『나는 고발한다』, 황의방 역, 한길사, 2015
에밀 졸라, 『나는 고발한다』, 유기환 역, 책세상, 2005
논문
마은지, 「드레퓌스 사건을 통해 본 프랑스의 분열과 통합」, 『서양사론』 135호, 20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