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이스라엘의 역사
- 최초 등록일
- 2020.06.07
- 최종 저작일
- 200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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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① 북이스라엘의 역사(931-721 B.C.E.)
북왕국 이스라엘은 여로보암으로부터 마지막 왕인 호세아에 이르기까지 19명 의 왕이 통치하였는데, 오므리 왕조와 예후 왕조를 제외하고 비교적 짧은 통치 기간으로 마감하고 있다. 19명의 왕 가운데 8명이나 암살되는등 비교적 안정되지 않은 파란의 역사를 가지고 있다.
㈎ 여로보암 왕조와 바사왕조(931-884 B.C.E.)
통일 왕국 분단의 직접적인 원인은 솔로몬의 억압적인 정책과 시정 방침에
있었다. 북왕국 이스라엘은 초대 왕이 된 여로보암이 이끄는 에브라임의 노동자 집단의 반란으로부터 시작되었다. 구동맹의 관계가 깨어지고, 사울 시대로부터 잔존해 있던 지파간의 갈등이 다시 시작된 셈이다.
여로보암 1세는 세겜을 수도로 정하고(왕상12:25), 즉각 단과 베델에 금송아지를 세우고 제의를 시행함으로써 예루살렘의 성전 제의를 대치시키는 개혁을 단행하였다(왕상12:27-30). 그는 레위인들을 몰아내고 자신의 사제를 임명하였으며, 절기의 날짜를 임의로 바꾸어 버렸다(왕상12:31-33). 이러한 종교 정책은 유다로부터의 완전한 정치적 독립과 함께 종교적 독립을 성취하기 위한 것이었다.
그가 통치하던 시기에 이집트의 시삭이 쳐들어 왔으며(왕상14:25,926년 B.C.E.), 다마스커스의 아랍족과의 전쟁도 간헐적으로 있었다. 남쪽 유다와의 관계는 경계를 정하고 그 경계를 수비하는 정도의 마무리가 있었다. 여로보암과 바사 왕조는 모두 단기간 통치하다가 구테타에 의해 타도 되었다.
㈏ 오므리 왕조(880-841 B.C.E.)
군사 구테타의 산물로 정권을 장악한 오므리는 4년에 걸친 내전에서 승기를 잡고 보다 강력한 중앙 집권적인 군주 국가를 만들어 나갔다(왕상16:21-23). 그는 사마리아에 화려한 수도를 건설하였으며(왕상16:24), 페니키아, 다마스커스 및 유다와 군사 동맹을 맺고 무역을 실시하였으며, 모압을 정복하고 봉신국으로 삼았다(왕하3:4). 오므리는 외국에서 볼 때도 '오므리 왕국'(bait hmuri)으로 표기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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