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사 연구, 18세기의 문화와 계몽사상
- 최초 등록일
- 2020.05.25
- 최종 저작일
- 20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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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서양사 연구, 18세기의 문화와 계몽사상"에 대한 내용입니다.
목차
Ⅰ. 서 론
Ⅱ. 종교적 관점
1. 종교적 긴장의 지속
2. ‘바로크적 경건성’의 건재
3. 신교의 종교 부흥 : 경건주의와 감리교
4. 회의주의와 세속화
Ⅲ. 문화적 관점
1. 문화적 저변의 확대
2. 문화의 거소
3. 민중문화
Ⅳ. 계몽사상
1. 계몽사상의 등장
2. 계몽사상의 절정기
3. 국가에 따른 다양성
4. 후기 계몽사상
5. 계몽사상의 유산
Ⅴ. 결 론
Ⅵ. 참고 문헌
본문내용
Ⅰ. 서 론
18세기는 지성사나 문화사에서 흔히 ‘이성의 세기, 또는 ’계몽의 세기‘로 불리는데 18세기에 유럽인들은 과학혁명의 성과에서 출발해 전통적인 교리와 기존 질서에 이성의 기준을 본격적으로 적용했다. 계몽 사상가들은 혁명적이지 않았으나 사상의 함의는 혁명적이었다고 할 수 있다. 이들은 인간이 무지와 편견을 극복한다면 이승에서 ’만인의 행복‘을 이룩할 수 있다고 믿었다. 허나 계몽사상으로 18세기의 다양한 문화적 흐름을 모두 포괄할 수는 없다. 계몽사상의 영향은 세기의 후반기에 가서야 뚜렷이 나타나며 세기의 전반기에는 기독교와 교회의 영향이 여전했다. 계몽사상은 나라와 사회계급에 따라 성격과 영향에 큰 차이가 있다. 본고에서는 18세기의 종교, 문화 그리고 계몽사상에 대해 알아보려 한다.
Ⅱ. 종교적 관점
종교개혁 이후 17세기 말이 되면 종교는 대중의 삶에 깊숙이 내면화되고 일반화되었다가 18세기 초가 지나면 유럽에서 종교와 교회가 후퇴하는 것으로 간주된다. 1715년을 기점으로 신·구교와 그리스 정교 모두 ‘바로크적 경건성’이 약화되며 세속화되었다. 그 근거로 1648년 베스트팔렌 조약 이후 종교전쟁이 종식되었다는 점과 1680년에서 1715년에 신교의 영향 이래 식자층 사이에서 더 합리적이고 이성적이며, 덜 교조적인 종교관, 심지어 ‘자유사상’과 무신앙관이 확산되었다는 폴 아자르가 말하는 ‘유럽 의식의 위기’를 들 수 있다.
1. 종교적 긴장의 지속
이러한 경향의 존재는 부정하기 어렵지만 이것이 1715년부터 진행되었다는 것은 시기상조로 보며 적어도 1750년까지는 종교적 긴장이 지속되는 ‘진정한 기독교의 세기’라고 불릴 만하다. 종교전쟁 또한 신성로마제국 내의 전쟁은 종식 되었으나 다른 지역에서는 지속되었으며 오스만과의 전쟁은 18세기 말까지도 ‘가톨릭의 성전’으로 간주되며 지속되었다. 또 유럽 내부에서 1756년 ‘외교혁명’으로 영국, 프로이센, 네덜란드가 프랑스, 오스트리아, 에스파냐에 맞서는 동맹체제가 종파적 양상을 보였다.
참고 자료
이영림 외 2명, 『근대 유럽의 형성 : 16-18세기』, 까치,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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왈라스클리퍼트 퍼거슨, 「서양근세사: 중세에서 근대로의 이행」, 집문당, 1989
김영한 엮음, 「서양의 지적운동」,, vol. 1, 2 지식산업사, 1994, 199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