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종의 조선과 세종의 조선
- 최초 등록일
- 2014.09.25
- 최종 저작일
- 201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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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Ⅰ. 머리말
Ⅱ. 조선의 시작
Ⅲ. 태종의 조선
1. 철권통치
2. 민본정치
Ⅳ. 세종의 조선
1. 왕도정치
2. 조선의 완성
Ⅴ. 맺음말
본문내용
어린 서자(庶子) 이방석(李芳碩)을 세워서 왕세자로 삼았다.
그리고 같은 날 발표한 개국공신의 명단에도 이방원은 없었다. 이방원에게는 정안군이라는 지위만 내려진다. 이방원은 스스로를 왕으로 만들었다. 정도전과 같은 명신들을 살해하고 심지어 자신의 형제들도 죽음으로 몰아넣고 자신의 처가인 민씨 집안을 멸하게 하고, 사돈은 심온 까지 죽게 만든다. 아버지에게 인정받지 못하고 형제의 피를 뒤집어 쓴 채 스스로의 길을 개척 해야만 했던 태종은 아버지 태조를 원망 하는 동시에 존경했다. 그리고 자식들은 자신처럼 만들지 않겠다는 마음 역시 있었다. 양녕대군을 쳐내고 충녕대군을 세자로 선 선택한 것은 여기에서 기인 된 것이다.
그는 상왕으로 물러나면서 군사 부문은 세종이 장년이 될 때 까지 자신이 담당 하겠다고 선언했다. 세종역시 태종에게 복종 했다. 국정의 사안들도 자신이 결정 하지 않고, 관련 내용을 정리해서 태종에게 보고한 뒤 결정을 받아 이것을 다시 신하들에게 통보하는 식이었다.
태조 이성계는 고려 때부터 이어온 재상들의 기관인 도평의사사를 최고의 정치 기관으로 운영 했다. 하지만 실제 정치는 정도전등 개국공신들의 손에 좌지우지 되고 있었다. 이에 태종은 도평의사사를 의정부로 개편한다. 1414년에는 육종의 관리들이 임금에게 직접 보고하고 지시받는 육조 직계제를 확립했다. 하지만 임금이 나라의 모든 일을 결정 할 수는 없었다. 때문에 중요한 정책은 여러 공신들이 함께 모여 논의하게 한 다음 시행하게 하였다. 그러자 다양한 의견들이 나오게 되고 의견을 통일시키는 일이 쉽지만은 않았다. 결국 최고 권력자인 임금의 결정을 기다리게 되는 시스템이 되는 것이다.
이와 달리 세종은 중요한 안건은 의정부와 육조에서 함께 논의하게 한 다음 자신이 최종 결재했다. 세종은 많은 신하들의 의견을 충분히 들어줌으로써 불평불만을 잠재웠다. 그래도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자신이 최고의 두뇌집단으로 양성하던 집현전의 학사들로부터 자문을 구했다.
참고 자료
조선왕조실록 http://sillok.history.go.kr 」국사편찬위원회
이상각, 이도 세종대왕」추수밭, 2008
지두환 세종대왕과 친인척」한영문화사, 2008
이한 나는 조선이다.」청아출판사, 2008
지두환 태종 대왕과 친인척」한영문화사, 2008
이한우 태종, 조선의 길을 열다.」해냄 20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