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군 ‘위안부’, 그리고 오늘날 우리들의 관심
- 최초 등록일
- 2014.01.21
- 최종 저작일
- 201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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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관한 기본 개념부터 심화된 내용까지 두루갖춘 리포트입니다.
목차
Ⅰ. 들머리 – 일본군 ‘위안부’란
Ⅱ. 본론
1. 위안소의 시작
2. 용기 있는 첫 증언 그리고 정기 수요 집회
3. 일본정부의 일관된 태도
4. 일본 여대생들의 생각
5. 현대판 일본군 ‘위안부’ - 미군 기지촌 위안부
Ⅲ. 갈무리 – 우리의 관심
본문내용
들머리 – 일본군 ‘위안부’란
제일 먼저 우리가 흔히 이야기하는 ‘위안부’란 명칭부터 바로 잡는 것을 짚고 본론에 들어가야 한다. 그리고 위안부와 정신대의 차이도 알아야하며 혼용해서는 안 된다는 것도 인식해야 한다. 우선 정신대는 ‘나라를 위해 몸을 바친다.’는 의미로 쓰이는 말이다. 일제강점기 중에 특히 1937년 중일 전쟁을 시작으로 1945년 해방이 되기까지 정신대라는 이름으로 우리나라 사람들을 전쟁의 수행 도구로 동원했다. 이렇게 징용된 노동자들은 도로, 철도, 비행장, 신사 등을 건설하고, 군사 시설에도 파견되었다. 이때 여성들도 예외는 아니었다. 남성들이 다 끌려가고 난 후 부족한 노동력을 여성들이 채웠고, 미래에 병사가 될 아이들을 낳는 도구로서 이용되었다. 1944년 8월에는 ‘여자 정신 근로령’을 발포하여 여성들을 국가 명령으로 징발하게 된다.
정신대는 위에서 설명하듯 위안부보다 포괄적인 의미라고 할 수 있다. 여성만이 아닌 남성들도 해당되고 징용되는 분야도 다양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가 아는 위안부는 여성들만 해당되는 개념이다. 우선 위안부라는 단어 자체의 의미를 알아보자. ‘위안부’라는 이름을 그대로 풀어 쓰면 ‘위로하여 마음을 편안하게 해 주는 여성’이라고 할 수 있다. 일본군이 행한 짓과 어울리지 않는 문장임을 느낄 수 있다. 이 용어에 관련해서 네덜란드 피해자 엘렌 할머니는 다음과 같은 증언을 했다.
“어느 날 한 일본 장교가 우리 소녀들을 줄을 세우더군요. 그러고는 손가락으로 몇몇 소녀들을 가리켰어요. 불행하게도 저 역시 그 속에 포함되었지요. 그 이후 그들은 우리에게 새로운 이름을 붙여 줬어요. ‘위안부’라는 이름이지요. ‘위안부(Comfort Woman)’, 어떻게 이런 아름다운 이름을 나에게 붙일 수 있었단 말인가요? 나는 누군가를 위로해 주는 여자가 아니라 노예였어요. 그것도 성 노예였지요.”
엘렌
2007년 12월 6일, 유럽 연합(EU) 의회에서 열린 ‘일본군 ’위안부‘ 문제 공청회’에서 네덜란드 피해자 엘렌 할머니의 증언이었다.
참고 자료
김정자, 『미군 위안부 기지촌의 숨겨진 진실』, 한울아카데미, 2013
박해순, 『이시카와 야스히로(박해순 옮김), 일본군 위안부 문제 – 일본 여대생들은 어떻게 공부하고 느꼈는가』, 동문사 현대신서, 2008
윤미향, 『20년간의 수요일』, 웅진주니어, 2010
정경아, 『‘위안부’ 리포트.1 ,나는 고발한다』, 길찾기, 20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