Ⅰ. 아날학파의 성립과 배경
Ⅱ. 아날학파의 패러다임
Ⅲ. 아날의 1세대(페브르, 블로크)
Ⅳ. 아날의 2세대 페르낭 브로델
Ⅴ. 아날의 3세대
Ⅵ. 아날학파에 대한 논거
본문내용
Ⅰ. 아날학파의 성립과 배경
아날학파란 무엇인가? 일반적으로 아날학파는 다음의 3대 기관을 중심으로 활동하고 있는 일단의 학자들을 가리켜 말한다. 즉, Annales誌, 고등학술연구원 제 6 section, 그리고 역사학연구소가 그것이다. 아날誌는 1929년에 창간된 그들의 기관지임과 동시에 그들 연구의 발표지로서 아날학파의 명칭도 이 잡지명에서 유래된 것은 말할 필요조차도 없다. 제 6 section은 프랑스 최고의 학술연구기관으로 설립된(1868)고등학술연구원의 6개 분과(인문과학 3, 자연과학 3)중의 하나로서 1947년에 설치되었다. 사회과학 분야의 고등학술에 관한 연구와 강의(교육)의 증진을 목적으로 삼고 있다. 1948년 제 6 section의 부속기관으로 설치된 역사연구소(Centre de Recherche Historique)는 역사연구에 필요한 사료를 수집?정리하여 관계학자들에게 제공하는 일을 맡고 있다. 이 3대 기관에서 활동하고 있는 아날학파의 역사는 그 명칭이 가리키고 있는 바와 같이 아날誌가 창간된 1929년부터 시작된다.
아날학파는 하나의 기성전통과 기성학파를 타파함으로써 비로소 형성될 수 있었다. 그 기성 전통은 프랑스의 대학들의 체제와 학문적 편협성이며, 그 학파란 프랑스의 대학들과 1868년 설립된 고등학술연구원에 뿌리를 박고 있는<소르본느학파(Sorbonnistes)1)>였다. 그들이 지향하는 역사는 사건중심의 편협한 정치사요, 외교사였으며 그 방법론은 문헌해독을 통한 개별적 특수성을 탐구하는 전통적 방법이었다. 한마디로 랑케사학의 추종이요, 수공업적 역사였다.
이러한 소르본느학파(기성사학)의 권위에 도전장을 던진 것은 프랑스에선 역사가가 아니라 실증주의(positivism)의 전통을 이은 사회학자 뒤르켐2)과 철학자 앙리 베르(Henri Berr)였다. 그들은 모두 랑케적 전통과 결부된 지식이론과 방법론을 비과학적인 것이라고 비판하였다. 역사학자라기보다 철학자였던 베르는 자기 주위에 젊은 세대의 학자들을 결집시켜 기성사학에 도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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