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전통건축] 부석사 무량수전
- 최초 등록일
- 2012.10.12
- 최종 저작일
- 201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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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한국전통건축 부석사 무량수전에 대해 설명했던 발표자료입니다.
도면, 사진 직접 스캔, 촬영했습니다
목차
무량수전의 유래
무량수전
건축가에 대해
고려시대의 건축
건축적 특징
도면(배치도,평면도,입면도)
본문내용
당나라에 유학 온 의상대사를 짝사랑하던 "선묘"는 그와의 사랑을 이루고자 온갖 노력을 다했으나 그의 목석같은 마음과 변함없는 불심에 탄복해 스님에 귀의하게 이르게 된다.
10 여년 후, 깨달음을 얻은 의상대사는 귀국길에 오르기 전 "선묘"를 찾아갔지만 없어 결국 떠날 수 밖에 없었습니다. 뒤늦게 달려온 "선묘"는 통곡을 하며 바닷물에 몸을 던져 용이 되었다.
그녀는 용이 되어 의상대사의 귀국길을 보호했다. 귀국 이후, 의상대사는 왕의 명을 받들어 절을 세우게 됐는데, 다른 종파들의 방해가 굉장히 심했다.
그러자 "선묘"는 큰 바윗돌로 변하여 그 종파의 머리 위에서 위협하여 방해를 뿌리뽑았다. 그렇게 영원히 뜬 바위가 된 "선묘"를 기리기 위해 의상대사는 그 절의 이름을 "부석사"로 정했다.
통일신라시대 676년(문무왕16년)2월 의상대사가 문무왕의 뜻을 받들어 창건
경문왕대(861~874)에 신림의 제자들이 부석사 화엄종
고려 말 진각국사 원응이 무량수전과 조사당 중건
1916년 무량수전,조사당 해체수리
1977~1980년 일주문,천왕문,숭당등 새로 세움
<중 략>
-부처상이 건물 중앙에 자리하지 않고 서쪽에 안치되어 동쪽을 응시하고 있음.
내부에 배열된 열주는 서쪽에 모신 아미타여래상을 한층 더 장엄하고 깊이감 있게 만듦
열주와 열주 사이의 주칸 크기의 1.62배 크기가 건물의 내부 높이로 황금비율임
-기단 밑에서 처마, 처마에서 용마루 윗선까지의 비례가 1 대 1 -> 입면관에서 느끼는 가장 안정된 비율
-지붕만을 보면 내림마루에서 귀마루로 꺾이는 변절점이 지붕 전체 높이의 2분의 1 지점이어서 이 역시 안정감을 줌.
여기에 기둥의 귀솟음, 안쏠림 기법은 다른 건축이 따를 수 없는 점이다.
참고 자료
http://ynucc.yu.ac.kr/~edupht/think/beauty/8.htm
논문 9~11세기 중반 부석사 무량수전 영역의 건축계획과 구성요소-홍병화
논문 한국전통건축 목구조의 분석과 자료모델링에 관한 연구-최진원,황지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