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현대 중국의 서구문화 수용양상
- 최초 등록일
- 2011.10.31
- 최종 저작일
- 2011.04
- 4페이지/ 한컴오피스
- 가격 1,000원
소개글
동양의 서구문물 발달로 인한 경제 향상에 대한 글
목차
없음
본문내용
<근현대 중국의 서구문화 수용양상과
유교지식인의 대응양상>
아시아의 대표적인 유교 중심 국가로서 수 세기 동안 아시아의 패권을 장악해 왔던 중국. 그렇게 끝나지 않을 것만 같은 중국의 번영과 중국 중심의 아시아 패권 질서가 서양과의 접촉을 계기로 흔들리게 되었다. 우리나라와 마찬가지로 ‘중화’라는 틀에 갇혀 그 속에서 최고를 자처하며 살아가던 중국 국민들에게 분명 발달된 서구 문명은 충격 그 자체로 다가왔을 것이다. 근대 신문물을 접한 여느 나라들과 같이 마찬가지로 중국은 큰 변화를 맞게 되고 더불어 중국의 사상적 기둥인 유교의 모습도 변화하게 된다. 그러면 근현대의 중국이 어떤 식으로 서구 문물을 받아들였는지 역사적 사건 순으로 알아보고, 그 당시의 유교 지식인들의 대응 양상 또한 알아보도록 하겠다.
중국 근대화의 본격적인 시작은 제 1,2차 아편 전쟁을 통해서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특히 중국 민족의 자아 인식의 역사는 아편전쟁에서 비로소 시작되었다. 아편전쟁 이전, 중국인들은 여전히 자신들이 세계의 중심이라는 의식으로 가득 차 있었고, 때문에 아직 명확한 자아 인식이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았다. 예를 들어 루쉰 선생은 <현대 중국의 공부자>라는 글에 “앞뒤가 꽉 막힌 이들 유생들은 네모난 땅덩어리에서는 너무도 잘 알고 있었지만, 원형의 지구 위에서는 아무것도 몰랐다.” 라고 표현하며 당시의 관료들을 풍자하기도 하였다. 아편 전쟁 이후 큰 충격을 받은 중국 민족은 자신들이 최고라는 중화사상을 포기해야 한다는 점을 알게 되었고, 민족의 약점에 대한 반성이 필요하며 자신들의 낙후성을 깨닫고 스스로를 개혁함과 동시에 세계에서 도태되는 일을 막아야만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결국 이러한 아편전쟁 실패의 충격 속에서 양무사조가 등장하게 된 것이다. 특히 양무사조의 대표적인 지식인들은 아편전쟁의 실패를 일시적인 기술 부족의 결과로 보았다. 대표적으로 일찍이 아편전쟁 이전부터 중국의 과학기술과 군사적 낙후성을 문제 삼았던 위원의 비판의식은 훗날 양무운동에 직접적
참고 자료
문명들의 대화 , 뚜웨이밍 지음, 김태성 옮김 , humanist
전통과 중국인, 류짜이푸, 린강 지음, 오윤숙 옮김, 플래닛