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동 답사기
- 최초 등록일
- 2011.10.05
- 최종 저작일
- 201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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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건축답사 정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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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정동, 낭만과 회한의 거리
사람들은 흔히 정동을 서울 도심 내 가장 걷기 좋은 길로 손꼽는다. 덕수궁 돌담을 따라 정동 제일 교회, 이화여고, 경향신문사까지 이어진 돌담길, 가을이면 낙엽이 되어 운치를 더해주는 줄지어선 은행나무들, 옛 정취를 물씬 느끼게 해주는 붉은 벽돌 건물 이러한 요소들이 도심 속에선 느낄 수 없는 고즈넉한 분위기를 만들어낸다. 걷고 있으면 자연스레 걸음이 느려지며 땅만 보며 걷던, 휴대폰만 만지작거리며 걷던 사람들은 정동 주변의 요소 하나하나를 눈이 카메라가 되어 한 장 한 장 머릿속에 담는다. 마치 시간여행자가 되어 과거로의 시간여행을 떠난 듯한 느낌까지 준다. 이러한 요소들 때문에 사람들은 정동 길을 낭만의 길이라고 부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낭만에 취해 그저 데이트 코스로, 산책로로 정동 길을 무심코 스쳐 지나가기에는 정동이 지닌 역사적 가치와 아픔이 나의 발목을 잡는다.
정동은 우리나라 개화기에 역사적 격변의 현장으로 정치의 1번지이며 근대 교육의 시작점, 최초로 신식결혼식이 거행된 곳, 최초로 한글 신문을 발행하고 방송국이 들어 선 근대 언론의 시발점, 처음으로 연회가 열린 곳, 처음으로 개신 교회가 세워진 곳, 15개의 박물관과 미술관, 공연장이 모여 있는 문화 예술의 시초가 되는 근거지 등 역사적으로나 문화 예술적으로나 상당한 가치를 지니고 있다. 이 모든 것은 조선시대 때부터 일어났는데 청, 일, 서구열강의 간섭으로 인해 정동은 각국의 외교장이면서 서양인촌이었다. 덕수궁을 중심으로 미국, 러시아, 영국, 프랑스 등 각국의 영사관이 들어서면서 근대문명이 자리 잡게 되었다. 이 때문에 정동에 선교사들이 많이 찾게 되었고 이로 인해 개신 교회인 정동 교회가 설립되었고 최초로 신식결혼식이 거행되기도 했다. 또한 배재 학당, 이화학당이 들어섰고 서양문물의 개념인 호텔과 다방도 자리 잡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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