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해고의 사학사적의미
- 최초 등록일
- 2011.07.19
- 최종 저작일
- 2008.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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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발해고의 사학사적 의미 고찰
목차
Ⅰ.들어가는 말
Ⅱ.유득공의 생애
Ⅲ.유득공의 역사인식
Ⅳ.『발해고』의 구성 및 체제
Ⅴ.『발해고』의 사학사적 의의
Ⅵ.나오는 말
본문내용
Ⅰ.들어가는 말
지금은 조금 잠잠해 졌지만 근래 중국은 소위 `동북공정`을 통하여 발해(渤海)의 역사를 중국의 지방정권으로 편입시키려고 노력하였다. 이로 인하여 우리나라에서는 발해에 대한 관심이 어느 때보다 높아졌었고 얼마 전에는 발해의 건국 시조인 고왕(高王: 대조영)의 삶이 드라마로 제작되어 인기리에 반영이 되었다. 그러나 아직 우리는 발해에 대해 많이 알고 있지 못하는 게 사실이다. 우리 선조들도 발해에 대한 인식이 부족하여 발해를 우리 역사로 인정하지 않았다. 여기서 다루게 될 유득공(柳得恭)의 『발해고(渤海考)』는 이런 발해에 대한 전통적인 역사인식을 바꾼 책이다. 여기서는 『발해고』의 저자인 유득공의 삶과 그의 역사적 인식, 『발해고』의 구성 및 체제 마지막으로 『발해고』의 사학사적 의의를 살펴보기로 하겠다.
Ⅱ.유득공의 생애
『발해고』의 저자 유득공은 조선 후기 영·정조 때에 살았던 시인이자 정치가로 우리 역사에서는 북학파의 한 사람으로, 그리고 이른바 사검서(四檢書) 조선 정조 때에 규장각의 검서관으로 선발된 네 사람의 실학자. 이덕무, 유득공, 서이수(徐理修), 박제가를 이른다.
의 한 사람으로 지목되는 인물이다. 또한 한문학사에서는 사가(四家) 사대시가 (四大詩家)의 줄임말. 조선 정조 때의 네 시인. 이서구, 박제가, 유득공, 이덕무를 이른다.
로 꼽히고 있다. 그러나 아직까지 그의 행장이 발견되지 않아서 그의 생애에 대해서는 불분명한 것이 많다. 현재로서 그의 행적을 추적할 수 있는 것은 그가 지은 부친 및 숙부의 묘지명, 모친의 행장, 그리고 그의 글 여기저기서 나타나는 단편적인 기록들이 고작이다.
유득공의 본관은 문화(文化)이며, 자는 혜보(惠風)·혜풍(惠甫)이고, 호는 영재(冷齋)·고운당(古芸堂)등이 있다. 특히 고운당은 운동이라고도 불리던 교서관동 지금의 충무로 2가 부근
에 오랫동안 살았기 때문에 붙여진 당호이다. 그의 증조부인 유삼익과 외조부인 홍이성이 서자였기 때문에 그는 서얼신분으로 태어났다.
아버지 유춘과 어머니 남양 홍씨 사이에 1748년 11월 5일에 태어난 그는 부친이 요절하지 모친 아래에서 자랐고 18,19세에 숙부인 유련(柳璉)의 영향을 받아 시 짓기를 배웠다, 20세를 지나 박지원(朴趾源)·이덕무(李德懋)·박제가(朴齊家)와 같은 북학파 인사들과 교유하기 시작하면서 그들과 일문을 이루면서 북학파의 한사람으로 참여했다. 25세때에는 기자로부터 후백제에 이르는 시기의 우리나라 한시를 모은 『동시맹(東詩萌)』1권을 엮고 서문을 지었다.
참고 자료
조이옥 ,「한국 전통사학의 동요-발해고」,신형식(편찬) ,『한국 사학사』,삼영사, 1999.
유득공(송기호 역), 『발해고』,홍익출판사.2000.
송기호, 「유득공」, 조동걸·한영우·박찬승(엮음), 『한국의 역사가와 역사학 』상, 창작과 비평사,1994.
이원희, 「사서로써 『발해고』에 대한 고찰」, 울산대 교육대학원, 2004.
송기호 ,「유득공의 발해고와 성해응」, 최승희 교수 정년기념 논문집 간행위원회 (편찬),『조선의 정치와 사회 : 최승희 교수 정년 기념 논문집』, 집문당, 20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