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해고와 유득공
- 최초 등록일
- 2006.08.30
- 최종 저작일
- 20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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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초기의 기록들 중 『東國通鑑』에도 역시 발해의 기록은 남아 있으나, 기사의 내용도 간략하다. 또한 <外記>, <三國記> 등과 같은 독자적인 체계로 분류도 되어 있지 않고, <新羅記>에서 조금 설명해 놓았을 뿐이다. 따라서 본격적으로 한국사로 인식하고 연구했다고 보기는 힘들다.
경술년 흥덕왕 5년, 당 문종 태화 4년
발해왕 인수가 졸하였다. 인수는 태조영의 아우 야발의 4세손이다. 바다 북쪽의 여러 부족을 토벌하여 영토를 확장시키니, 당에서 조서를 내려 검교사공으로 높이였다. 대조영 이래 자주 여러 생도를 경사의 태학에 보내어 고급의 제도를 연구하게 하니, 이에 이르러 드디어 해동성국이 되었고, 땅은 5경 15부 62주를 보유하게 되었다. 숙신의 옛 땅을 상경으로 삼아 용천부라 하여 용주, 호주, 발주의 3주를 관할하게... <중략>... 안원부는 영주, 미주, 모주, 상주인 4주를 관할하게 하였고, 또 영주, 동주, 속주의 3주는 독주주로 삼았는데, 속주는 그 속말강에 가깝기 때문이니, 대개 이른바 속말수 이다. 그 예악과 관부제도는 대체로 중국을 모방하였다고 하겠다.
다음은 유득공의 『渤海考』 이후 저술인 한치윤의 『海東歷史』이며, 이곳에는 世紀11에 渤海편을 두고 기술하였고, 발해고에서 <屬國考>로 정안국을 기록하고 있으나 여기에서는 世紀16에 정안국을 별도의 세기로 기록하고 있다. 또한 기사의 내용면에서 『渤海r考』와는 큰 차이는 나지 않지만, 편년체의 구성으로서 년도의 기술이나 그 구성에서, 그리고 각기 기사마다 그 출처를 밝히는 등 『渤海考』보다 좀 더 자세히 기술하고 있다.
살펴 보건데, 발해는 본디 흑수말갈의 속말부로 高句麗에 신하로 소속된 나라이다. 옛 숙신씨의 지역에 살면서...<중략>... 東史 를 보면, 대조영은 본디 高句麗의 옛 장수로, 唐이 고구려를 멸한 뒤 백성들을 농우와 하남 지방으로 옮기자 백성을 거두어 모아 도망쳐 태백산에서 근근히 보존하였다. 그 뒤 高句麗와 말갈의 전 지역을 차지하였다. 사방 5천리로 5경과 15부를 두었다. <중략>
부여, 옥저, 변한, 조선 등 바다 북쪽에 있는 諸國들을 모두 차지하였다. <新唐書>
대종 대력 8년 문왕 37년 12월에 사신을 보내 조공하였다. 대력 2년에서 10년까지 매년 혹 두해마다 한번씩 혹 한해에 두세 번 조겅이 오기도 하였다. <舊唐書>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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