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사화의 요약과 전개
- 최초 등록일
- 2011.05.30
- 최종 저작일
- 2008.10
- 3페이지/ MS워드
- 가격 1,000원
소개글
시험 대비 혹은 레포트 작성을 위한 조선시대 사화에 대한 내용
목차
없음
본문내용
-정치사적 입장에서 본 조선시대 사화의 성격-
[무오사화]
-발단 : 치세 25년간 각종 사업과 정비 사업이 완성된 성종 시기, 이 시기 동안은 삼사의 도전이 심화 되었다. 삼사 내 젊은 신진관료들이 고위 관료층에게 도전하게 되면서 정치권이 이동되고 있었다. 당시 군왕인 성종은 관리들의 성품이나 능력에 대해 공정하길 원했고 유교적인 성향을 띄고 있었기 때문에 대부분 삼사의 의견에 찬성하는 입장이었다. 이런 와중에 일어난 무술옥사는 이후 벌어질 무오사화의 발단이 되었다. 이 옥사는 성종 치하의 정치 분쟁 중 최초의 대사건으로 임사홍과 유자관이 조정의 요직에서 축출되고 삼사의 간쟁권 행사가 심해졌다는데서 그 의의를 찾을 수 있다. 사헌부, 사관원에서 올라오는 상소의 내용은 고위 관리와 종친, 국왕에 대한 비판이었고 당시 공격 대상이었던 임사홍은 양사의 간쟁권에 대해 성종에게 간청하게 되었다. 그러나 성종은 대간의 편을 들어주었고 이후 전개 양상은 삼사의 비판과 대신의 간청이 이어지는 구조를 가지고 있었다. 그 후 성종 말에서부터 연산군 초까지 있었던 윤필상과 노사신에 대한 삼사의 공격은 표면적으로는 유교기반으로 불교를 배척한 당연한 사상적 내용이었으나 실상은 대신을 공격한 것으로 노사신은 왕에게 대간의 간쟁 활동을 억제해야 할 필요성이 있음을 주창하게 된다. 노사신은 사직원을 제출하면서 윗사람을 능멸하는 것에 대한 풍조를 지적하였는데 이후 노사신이 해임되고 윤필상이 좌천되면서 삼사의 간쟁 활동은 과격해져 상대를 가리지 않고 공격하였고 강경한 태도를 유지하였다. 당시 군왕인 연산군은 이들의 간쟁 활동의 자세나 방향을 싫어하여 제재 조치를 하게 되었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