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용가 (향가)의 작품 세계와 후대 수용
- 최초 등록일
- 2011.01.20
- 최종 저작일
- 2010.09
- 13페이지/ 한컴오피스
- 가격 1,500원
소개글
신라 처용가 작품 분석 및 배경, 후대 수용 양상을 정리했습니다.
A+ 받았습니다.
목차
I. 향가의 이해
II. 향가 작품
III. 향가의 작품세계
1. <처용가>의 작품 세계
2. <처용가>의 작품 구조
III. <처용가>의 후대 수용 양상 : 문학작품을 중심으로
1. 고려속요 <처용가>
2. 현대시로의 변용
3. 현대소설로의 변용 : 김소진의『처용단장』
IV. 나가며
V. 참고 문헌
본문내용
I. 향가의 이해
향가(鄕歌)는 일반적으로 향찰(鄕札)로 기록된 시가 장르로 이때 향찰은 한자의 음과 뜻을 빌어 우리말을 적은 문자이다. 현재까지 밝혀진 바로는 향찰은 삼국시대 중 신라에만 있었던 우리 식의 글자였고 신라인들은 이를 받아드리고 변용시켜 향찰이라는 독창적인 문자를 창안했던 것이다. 이러한 향찰로 쓰인 향가는 독특한 형태를 가진 특수 유형의 시가가 아니라 향찰로 쓰인 이두식(吏讀式) 문자로 표기된 신라시대부터 고려 초기까지 불렸던 우리 고유의 시가를 지칭하는 말이라고 할 수 있다. 『신라향가연구』, 성호경, p26 참조, 태학사, 2008
이러한 향가는 신라 건국 초기단계에 이미 생성되었다는 입장과 <서동요(薯童謠)>가 가장 이른 시기에 쓰였다고 보아 6세기경에 등장하였다고 보는 입장 이 있으나 향가의 정확한 형성 시기를 잡을 수는 없다. 다만 <서동요>는 6세기 이전부터 구전되던 동요이기에 향가의 생성시기를 6세기라고 단정 지을 수 없는 것이다. 또한『삼국사기(三國史記)』에 의하면 유리왕 5년(28년)에 <도솔가(兜率家)>가 지어진 것이 시초라고 하였는데, 이 또한 향가의 형성 시기를 단정 짓지 못하는 것은 오늘날 전해지는 신라가요는 6세기 통일 신라 이후의 것들이기 때문이다.
한편 문헌 기록에 의하면 향가는 사뇌가(詞腦歌), 도솔가 등 다양한 명칭으로 불렸으나 학자에 따라서 협의로 ‘신라의 가요’, ‘고향의 노래’로 해석하고 있는데 일반적으로 향가는 우리말로 된 노래라는 뜻을 지닌다. 이렇듯 향가는 <서동요>에서부터 <보현십원가(普賢十願歌)>11수에 이르기까지 약 370여 년 동안 성행하였는데 현존하는 작품은『삼국유사(三國遺事)』14수와『균여전』의 11수에 불과하다.
향가는 우리의 글이 없었던 당시 한자의 음과 훈을 이용하여 향찰이라는 우리식의 문자를 만들어 사용하였던 점에서 우리 민족의 강한 주체성을 엿볼 수 있으며 우리 문학사상 최초의 정형화된 서정시라는 점에 중요한 의의가 있다.
참고 자료
양희철,『삼국유사 향가연구』, 태학사, 1997
박노준,『향가여요의 정서와 변용』, 태학사, 2001
성호경,『신라향가연구 : 바른 이해를 위한 탐색 』 태학사, 2008
박노준,『 옛사람 옛노래 향가와 속요』, 태학사, 2003
류렬,『향가연구』, 박이정, 2003
신재홍,『향가의 해석』, 집문당, 2002
양희철,『삼국유사 향가연구』, 태학사, 199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