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로마치시대의 수묵화
- 최초 등록일
- 2010.07.05
- 최종 저작일
- 201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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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무로마치 시대의 수묵화의 특징, 대표작가, 작품
목차
Ⅰ. 무로마치 시대(室町時代)의 배경
Ⅱ. 무로마치 시대의 수묵화
Ⅲ. 일본 문화에 있어서의 수묵화
본문내용
Ⅰ. 무로마치 시대(室町時代)의 배경
1336년 일본의 아시카가 다카우지(足利尊氏)가 겐무정권(建武政權)을 쓰러뜨리고 정권을 잡은 때부터 1573년 아시카가 막부가 오다 노부나가(織田信長)에게 멸망될 때까지 약 240년간의 시대를 말한다. 교토(京都) 무로마치(室町)에 궁전을 세웠기 때문에 통상 무로마치시대라고 한다. 좁은 뜻으로는 남북조의 통일이 이루어져 막부의 일원정치가 시작되기까지의 56년간과 오닌(應仁)의 난이 일어나 전국시대(戰國時代)로 접어든 1467년 이후를 제외한 기간을 말하기도 한다.
전대(前代)인 가마쿠라(鎌倉)시대까지는 천황을 받드는 구게(公家)정권과 막부 정권이 양립하는 2원정치였으나 아시카가시대는 구게 정권을 물리치고 무가(武家)에 의한 단독정권을 수립한 것이 특징이다. 정치적으로는 고다이고 천황(後醍蝴天皇)의 친정(親政)을 내세우는 남조에 대하여 고묘천황(光明天皇)을 옹립하고(북조), 남조를 굴복시킨 권력의 확립기, 최성기, 쇠퇴기 등으로 나눌 수 있다. 사회적으로는 장원(莊園)제도가 붕괴되고 그 대신 슈고다이묘(守護大名)가 각처에서 세력을 뻗어 슈고다이묘들의 세력 균형 위에 유지되다가 1467년 오닌의 난이 일어나면서 이들 슈고다이묘들의 세력이 각축전을 벌이는 전국시대를 겪은 뒤 멸망하였다.
3대 쇼군 요시미쓰(義滿)때는 명나라에 내조하여 명으로부터 처음으로 ‘일본국왕’의 칭호를 받았으며 명과의 교역도 활발하였다. 문화적으로는 교토 기타야마(北山)에 세운 긴카쿠(金閣)를 대표로 하는 기타야마문화(北山文化)와 히가시야마(東山)에 세운 긴카쿠(銀閣)를 대표로 하는 히가시야마문화(東山文化) 등 무가문화가 개화하였고 동시에 서민계급의 대두에 따른 서민문화가 형성되었다. 오토기조시(お伽草子)·교겡(狂言)· 렌카(連歌) 등 다소 외설적이지만 생기발랄한 문화였다.
Ⅱ. 무로마치 시대의 수묵화
1. 수묵화
채색화에 반대되는 개념으로, 동양회화 고유의 특징이다. 수묵의 역사는 당대(唐代)에 먹의 색이 오채(五彩)를 대신할 수 있다는 사상 아래 채색의 관념을 탈피하면서 시작되었다.
참고 자료
일본국립문화제기구e國寶 [http://www.emuseum.jp]
수묵, 인간과 자연을 그리다 (고바야시 다다시 지음, 윤철규 옮김, 2006년)
일본 미술의 복고풍 (국립중앙박물관, 2008년)
일본 미술 이해의 길잡이 (쓰지 노부오 지음, 이원혜 옮김, 1994년)
일본 수묵화의 세계 (가나자와 히로시, 마츠시타다카키 지음, 강덕희 옮김, 1995년)
일본 회화사 (야키야마 테루카즈 지음, 이성미 옮김, 2004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