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후기서원연구
- 최초 등록일
- 2010.05.27
- 최종 저작일
- 200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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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서원에 관한 레포트
목차
제3장 서원과 사원의 관계
① 서원의 경제적 기반
② 서원과 사원의 관계
제9장 대원군의 원사훼철과 영남유소
①원사훼철 과정
② 영남유소의 전말
본문내용
제3장 서원과 사원의 관계
조선중기 서원이 설립될 수 있었던 사회․경제적 배경의 하나로 생각되는 사원경제의 서원경제로의 이속문제를 중심으로 서원과 사원의 관계를 살펴본다. 서원과 서원의 관계는 서원설립 초창기의 서원의 경제적 기반과 유불교체라는 시대적 전환기에 당시 사원과 불가분의 관계에 있었던 재지사족들의 사원을 그들의 향촌의 재지적 기반으로 활용하고자 함으로써 성립되었다. 조선초기 유불의 교체는 치국이념의 교체인 동시에 종래의 불교시설과 사원소유의 전민이 유교적인 시설 또는 사족의 경제적 기반으로 탈바꿈함을 의미한다. 서원과 사원의 관계는 이러한 시대적 분위기 속에서 성립되었다.
① 서원의 경제적 기반
서원의 인적 자원이 되는 노비는 설립 초기에는 대부분 관의 조치(措置)에 의존(依存)하였다. 이후 서원의 설립이 증가하면서 그 폐해가 점차 노출되자 국가는 노비의 수를 한정하고 있다. 그러나 이것은 명목상의 것이었지 실제에 있어서는 노비의 수는 증가하는 추세에 있었다. 이 노비는 서원경제의 큰 목을 담당하고 있었다. 서원전은 지방관의 令으로 면세되는 것이 상례이었고 수령들의 제공과 노비들의 개간으로 서원전은 큰 일대촌으로 성장하기도 하였다. 한편 서원은 어람(魚鹽) 및 현물을 지방관의 조치 또는 서원자체의 경제력으로 확보하고 있었다. 당시 지방관의 서원에 대한 현물공여는 하나의 상식으로 되어 있었다. 이는 지방관과 서원 사림과의 밀접한 상호 협조 관계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즉 당시 향촌사회를 장악하고 있던 사족을 수령은 무시 할 수 없었고 또 그들의 협조에 의해 수령의 지위가 유지되었던 것이다. 이러한 막대한 경제력을 바탕으로 사족들은 자신의 기반을 더욱 공고히 하였다. 서원과 사원 이 양자의 관계는 15세기에 지배세력이 불교세력에서 유교세력으로 넘어감으로서 국가가 인정하는 사찰(寺刹)만이 명맥을 유지하고 그렇지 못한 사찰은 官府의 시설(施設) 또는 在地士族의 액당(額堂), 제사(齊舍), 정사(精舍) 등으로 탈바꿈하는 시대적인 분위기 속에서 양자의 상호이해의 관계로서 연결되는 것이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