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효의 생애와 사상
- 최초 등록일
- 2010.04.04
- 최종 저작일
- 201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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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 시대적 배경
2. 생애
3. 사상
1) 일심사상
2) 화쟁사상
- 환원론
- 양시양비론
- 실용주의
3) 정토사상
4) 무애사상
4. 원효사상의 의의
* 참고자료 *
본문내용
1. 시대적 배경
원효 당시의 신라 불교는 이미 전래된 지 100년 이상의 역사를 지니고 있었다. 신라에서 불교가 공인을 받은 것은 제23대 법흥왕 14년이었다. 그 당시의 불교는 국왕의 귀의를 얻어 사탑의 건립, 계단의 설립, 승니의 육성 등 각 방면에 걸쳐서 상당한 노력이 경주되었기 때문에 대폭 융성하고 있던 시기였다. 이렇게 신라에 불교가 대폭적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었던 것은 당시 신라의 정치적 상황이 이전의 무교적 사고방식을 대체할 새로운 사상을 필요로 했기 때문이다. 법흥왕 전후의 시기는 본래의 왕족에 대신하는 이계 왕권이 등장하여 본계의 왕권을 누르고 정통성을 확립해 가던 시기였다. 그런데 자연 불교의 업설 등은 무속적 세계관을 해체하면서 그 무속적 세계관에 의해 하늘에서 내려온 고귀한 혈통이라는 것에 의해 권위를 부여받고 있는 본계 왕실의 권위를 해체하는 것이었다.
또한 현실의 왕권을 불교의 전륜성왕이라는 불교를 옹호하는 세속의 그 전륜성왕의 대응시킴으로써 그 권위를 높이려는 움직임이 일어났다. 아울러 그 전륜성왕의 세상에 출현한 미륵불에 의해 이루어지는 융화회상이라는 이상적인 세계는 이 지상에 그러한 세상을 이룰 수 있으며 이루어야 한다는 것으로 국가의 구성원을 이끌어 어떤 목적으로 지향하게 하는 힘을 지닐 수 있는 것이었다. 이렇게 왕실의 주도 아래서 도입된 불교는 자연 왕실로 대표되는 국가의 옹호라는 목적에 밀접하게 연관된 호국불교의 형태로 발전할 수밖에 없었다. 호국불교로써의 신라불교에서는 계율을 중시하는 풍조가 일반적이었는데, 계율은 업과 윤회의 기준으로 제시되는 것으로서 이러한 계율사상의 흥기는 바로 절대적 왕권과 그를 중심으로 한 귀족층의 지배를 정당화하는 역할을 한다. 즉 지금 현실에서 어떤 지위에 있는가는 전생의 업에 의해 결정된다는 방식의 비본질적인 인과응보설의 적용에 의해 현실의 지배구조를 합리화하는 것이다. 이러한 수직적인 차별을 정당화하는 인과설에 의해 단순히 현실을 인정하게 하는 도구로서의 불교는 일반 대중들을 단순한 불교 교화의 대상으로 여길 뿐 궁극적인 종교적 구원에 동참할 길을 열어주지는 않았던 것이다.
참고 자료
1. 김교빈, {한국철학 에세이}, 동녘
2. 한국철학연구회, {한국철학사상사}, 한올아카데미
3. 변밀운, {한국과불교}, 초암출판사
4. 윤사순 고익진 편, {한국의 사상}, 열음사
5. 박태원 저,{원효 사상|}, UUP
6. 불교신문사 편, {한국불교인물사상사}, 민족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