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개글
고려사 수업시간에 정지상을 택하여 연구한 레포트입니다.
그동안 알려졌던 한문학자 정지상을 넘어서
정치가로서의 정지상, 그리고 정지상의 사상에 대해 알아보았습니다.
목차
1.시작하는 말
2.예술가 정지상
3.정치가 정지상
4.정지상의 사상
5.정리하는 말
본문내용
1. 시작하는 말
한문학을 연구하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정지상`과 그의 한시가 많이 연구되어 왔다. 그는 고려의 12명의 뛰어난 시인 중의 한 사람으로 꼽히고 있는데 특히 당대 문벌귀족의 대표라 할 수 있는 김부식과 그 시풍과 문학의 성격에 있어서 차이를 보이고 있고, 그러한 이유로 역사상의 라이벌이라 불리며 많은 설화를 남겼기 때문에 더욱 사람들의 뇌리에 정지상은 고려를 대표하는 시인이라고 각인되어 있는지 모르겠다.
하지만 정지상은 실제로 시인이라기보다 정치가라는 이름이 더 어울리는 사람일 것이다. 그는 예종 9년(1114) 성시에서 장원으로 합격하여 인종 집권기에 척준경을 탄핵함으로써 정계에서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고, 이후 묘청, 백수한 등과 함께 서경 천도, 금국 정벌, 칭제 건원을 주장하는 등 활발한 정치활동을 했다. 그리고 비록 고위직에는 올라가지 못하였지만, 인종의 측근세력으로 당시 고려사회의 모순을 직접 느끼고 개혁하려는 노력을 아끼지 않았다.
이를 보면, 정지상이 단순히 시인이라는 사람들의 인식이 정작 정지상에 대한 평가를 하지 못하고 그의 정치사상과 대외 인식 등을 바로보지 못하게 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나는 여기서 정지상에 대하여 논하고자 한다. 여기에는 우리가 보편적으로 알고 있는 한시 작가로서의 정지상뿐 아니라 정치가로서의 정지상을 살펴보고, 이러한 그의 사상적 배경 또한 함께 고찰하려고 한다.
2. 예술가 정지상
정지상은 특히 그 문장으로 이름이 후세에까지 전해지고 있다. 관서지방에 전해 내려오는 설화에서 그는 이미 5세에 강에 떠 있는 오리를 보고 "何人把神筆, 乙字寫江波"라는 문장을 지었다고 한다. 이후로 정지상은 김부식에 의해 죽임을 당하기 전까지 「送人」, 「題登高寺」, 「長源亭」, 「春日」 등 주옥같은 작품들을 남겼다.
먼저 당시의 문학계의 라이벌이었던 김부식과 정지상의 관계를 설명하려고 한다. 전해 내려오는 설화에는 정지상이 지은 ‘琳宮梵語罷, 天色淨琉璃(구슬 달린 궁궐에 염불소리 마칠 때에 하늘빛이 유리처럼 고와라)’라는 글귀를 김부식이 보고 반하여 마지막 자구를 자신이 맞출 터이니 시를 달라고 하였다고 한다.
참고 자료
◆단행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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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역사 연구회, 『고려시대 사람들은 어떻게 살았을까 1권』, 청년사, 2005.
김창현, 『고려 500년, 의문과 진실』, 김영사, 2001.
신정일, 『한국사, 그 변혁을 꿈꾼 사람들』, 이학사, 2002.
김갑동, 『한국 역사상의 라이벌』, 신서원, 1995.
박용운, 『고려시대 사람들 이야기』, 신서원, 2001.
◆논문
강미정, 「정지상의 정치활동과 사상」이화여자대학교 대학원, 2001.
◆인터넷 자료
고려사
(http://k5000.nurimedia.co.kr/intro.asp?Book=고려사) 누리미디어, 2007년 10월 10일
고려사절요
(http://www.minchu.or.kr/index.jsp?bizName=MK&url=/MK/MK_BOOKLIST.jsp%3Fseojiid=kc_mk_a004%26setid=906437%26sectionname=total%26pos=1%26tc=62%26cp=1) 민족문화 추진회, 2007년 10월 10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