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주영에 대해
- 최초 등록일
- 2008.11.27
- 최종 저작일
- 200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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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주영에 대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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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정주영은 1915년 11월 25일 강원도 통천군 송전면 아산리에서 가난한 농부였던 정봉식과 한성실의 6남 2녀 중 장남으로 출생했다. 그는 어려서부터 조부에게 한학을 배우고, 송전소학교를 졸업한 후, 조상 전래의 가난을 숙명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16세에 소 판 돈 70원을 갖고 상경했다. 그 후 아버지의 설득으로 다시 농촌생활을 했으나 이후에도 2번에 걸쳐 가출을 시도, 스스로의 운명을 개척했다. 1931년 18세 때 마지막 가출로 인천 부두, 보성전문학교 신축 공사장 등지에서의 막노동꾼 생활을 거쳐 풍전 엿 공장에서 일하던 정주영은 마침내 첫 직장으로 쌀가게인 부흥상회에 정착하게 된다. 이후 정주영은 이곳에서 특유의 성실함과 근면함으로 주변의 신뢰를 얻게 되고, 마침내 자신이 가게를 인수해 경일상회를 개업하면서 자수성가의 꿈을 이루게 된다.
`아산 정주영`이란 이름은 이제 `한국 경제`의 대명사가 되었다. 그리고 그가 이룩한 경제 신화는 하나의 커다란 산맥을 형성했다. 해방 이후 황무지에 세운 `경제`라는 산맥 중 가장 높은 봉우리에 지금 그는 서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정주영이 정복한 큰 산봉우리를 그저 바라보고만 있다. 그러나 역사의 발전은 계단 을 오르듯 선세대가 만든 토대를 밟고 보다 높은 단계로 오르는데 그 의미가 있다. 한국 경제가 발전하려면 정주영이 정복한 큰 산봉우리를 훌쩍 뛰어넘는 후세대가 나와야 한다. 즉, `정주영 뛰어넘기`야말로 21세기의 거대한 산봉우리를 정복하기 위한 대안이자 우리의 과제인 것이다. 정주영`을 모르면 `정주영 뛰어넘기`를 할 수 없다.
정주영이 16세의 어린 나이로 가난한 농촌을 떠나는 데 가장 큰 계기가 된 것은 동아일보에 연재된 이광수의 소설「흙」때문이었다. 정주영은 이 소설을 읽기 위해 그 마을에서 유일하게 동아일보를 배달해 보는 구장 집으로 매일 밤마다 2km를 달렸다고 한다. 정주영은 「흙」을 읽으며 도시생활에 대한 꿈을 키웠고, 책의 주인공처럼 변호사가 되기 위해 가출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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