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유교적 생활문화와 여성의 지위
- 최초 등록일
- 2008.06.11
- 최종 저작일
- 2005.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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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조선시대 유교적 생활문화와 여성의 지위
목차
I. 머리말
Ⅱ.결혼제도와 여성의 지위
Ⅲ.재산상속과 여성의 지위
Ⅳ.내외법과 정절관념
Ⅴ.맺음말
본문내용
I. 머리말
원래 유교는 중국의 현세적ㆍ실용적인 세계관을 반영하는 능동적 사회질서 유지의 원리로서, 삼국시대 이후부터 우리나라 중앙통치에 활용되어 왔다. 특히 조선시대에 들어서면서부터는 고려왕조의 정신적 이념이었던 불교를 배척하고 유교를 바탕으로 한 진정한 왕도정치의 실현을 천명함으로써 역성혁명을 이룩하고 그 정권의 정당성을 확보하는데 기여하였다. 이로부터 유교 즉 성리학은 가정ㆍ사회ㆍ국가의 질서를 유지하는데 기본이념이 되었다. 이러한 유교적 이념의 보급과 정착에 따라, 조선사회에는 조정의 문물제도로부터 가정의 사소한 의례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한 변화가 초래되었다. 특히 가족윤리에 많은 변화가 일어났고, 그 중에서도 유교적 여성관은 가부장제 사회를 강화시키는데 주요한 역할을 한 것으로 인식되었다.
원래 유교에서 구현하고자 했던 남녀관계의 이상적인 윤리는 남녀와 부부가의 상호 존중과 역할 분담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실제로 전통적 유교의 여성관에는 남녀 또는 부부간의 차별과 동시에 구별의 윤리가 내재된 것으로 보여진다. 차별의 경우에는 남성은 지배ㆍ강건ㆍ존귀로서 규정, 이해하는데 반해 여성을 복종ㆍ유순ㆍ비천의 대칭형으로 규정, 이해하는 데서 그 모습이 잘 나타나며, 구별의 경우에는 거처와 직분을 나누는 데에서 찾아볼 수 있다.
이러한 기본적인 유교윤리의 남녀차별과 구별관이 실제로 조선사회에서 구체적으로 어떻게 나타났는가에 대해서 본 연구는 결혼풍속ㆍ재산상속ㆍ내외법과 정절관념을 통해 여성의 지위를 규명해 보려 한다.
Ⅱ.결혼제도와 여성의 지위
흔히 `장가를 든다`는 것은 `입장가(入丈家)`라는 말에서 유래한 것으로 장가(丈家)에 들어간다(入)` 즉, 장인의 집으로 들어간다는 뜻이다. 왜 장인집에 들어간다는 말이 결혼한다는 의미로 쓰였을까. 오늘날 우리는 결혼하면 당연히 여자가 시집으로 가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러나 실제 우리의 결혼풍속은 고구려 이래 서류부가(壻留婦家) 또는 남귀여가(男歸女家)라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