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개글
인문학 - 백제문화유적지답사보고서 (사진 있음)
목차
1. 신석기시대의 모습을 재현한 암사동 선사유적지
(1) 농경 생활
(2) 어로 생활
(3) 움집
(4) 암사동 선사유적지 답사 후기
2. 한강변의 백제 도읍지를 찾아서
(1) 몽촌토성
(2) 풍납토성
(3) 몽촌토성과 풍납토성의 관계
(4) 아차산성
(5) 석촌동백제초기적석총
(6) 백제 유적지 답사 후기
본문내용
1. 신석기시대의 모습을 재현한 암사동 선사유적지
- 흔히 신석기시대를 신석기혁명이라고 부른다. 그 이유는, 신석기시대에는 인류 역사상 문명의 발전을 결정지은 혁명적 사건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토지의 생산성이 증대하고, 정착생활을 시작하였으며, 인구가 증가하고, 잉여 생산물이 발생하게 되었다.
그렇다면, 지금 현재 살고 있는 이 서울 땅에 신석기시대에는 인간이 어떤 모습을 가지고 어떻게 생활했을까? 이것을 알아보는 일은 매우 흥미로운 것이다. 또한 그 호기심을 떠나서, 우리 민족의 기원을 알아보는 일이라는 점에서 의미를 갖는다.
서울시 강동구 암사동에 있는 선사주거지는 두만강 하류, 대동강 하류, 낙동강 하류와 더불어 우리나라 신석기문화의 4대 중심지의 하나이다. 암사동 선사유적지는 동남쪽의 구릉에 신석기시대 다음 시대인 청동기시대의 민무늬토기 유적과 인접되어 있어 두 시대의 문화가 접촉하는 양상을 알려주며, 또 농경문화의 시작을 입증하여 주는 고고학적 자료도 발견되어 한국선사문화의 추이를 밝히는데 있어서 귀중한 유적지이다.
(1) 농경 생활
- 신석기인들이 정착생활을 하고 농경을 시작하였다는 사실은 예전부터 배움을 통해 잘 알고 있었다. 그런데 막상 암사동 선사유적지를 방문해 보니, 미처 생각지 못했던 부분이 있었다. 신석기인들이 도구를 사용하여 자연을 지배하기 시작했다는 사실이 바로 그것이었다. 수백만 년 동안 돌멩이를 깨뜨리기만 했던 사람들이 그것을 갈아 쓰기 시작한 것, 그리고 수백만 년 동안 음식물을 보관하는 데 애를 먹던 사람들이 그것을 담아 둘 토기를 만들기 시작한 것은 인류 역사를 완전히 바꾸어 놓은 혁명이었다.
암사동 선사유적지에서는 신석기시대의 대표적 토기인 빗살무늬토기도 볼 수 있었다. 이 토기는 바탕흙이 사질토에 운모가루 또는 석면과 활석이 섞여 있으며, 흙 테를 하나씩 따로 빚어 차례로 쌓아올린 수법으로 만들어졌다고 한다. 그릇 모양은 곧은 입술 모양에 뾰족 밑 또는 둥근 밑이고 반 달걀모양을 하고 있다. 빗살무늬토기를 보면서 신석기시대의 토기 제작 기술의 정교함에 놀랐으며, 바닥이 뾰족한 모양인 경우 땅 속에 파묻기 쉽게 하기 위함이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또한, 지금 우리가 생활 속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대접이나 그릇이 얼마나 오랜 기간 경험을 쌓는 과정에서 만들어 졌는지를 알게 되었으며, 거기에다가 미적인 요소까지 가미된 빗살무늬토기를 보고, 신석기인들의 문화가 결코 그냥 간과할 수 없는 부분임을 깨닫게 되었다.
참고 자료
한국생활사박물관 편찬위원회, 『한국생활사박물관』제1권, 선사생활관, 사계절, 2000
한국생활사박물관 편찬위원회, 『한국생활사박물관』제4권, 백제생활관, 사계절, 2000
김태식, 『500년 백제를 깨우다』,「풍납토성 」, 김영사, 2001
권오영, 경당지구 발굴조사에서 드러난 풍납토성의 풍경, 풍납토성, 서울역사박물관, 2002
임영진, 백제의 곰말 몽촌토성, 송파문화원, 20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