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억 시인에 대해서
- 최초 등록일
- 2008.01.12
- 최종 저작일
- 200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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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오뇌의 무도>, <해파리의 노래> 등의 시작품으로 유명한, 김소월 시인의 스승 김억 시인의 대표 작품들과 그의 시세계에 대해 조사한 전공과목 조사발표자료입니다. 김억시인에 대해 공부하시는데 많은 도움이 되리라 생각합니다.
목차
Ⅰ. 서론
Ⅱ. 본론
(1) 김억의 생애
(2)김억의 시 세계
① 시 경향
② 작품분석
(3) 김억 시인의 특징 및 한계
Ⅲ. 결론
본문내용
Ⅰ. 서론
뿌리가 깊고, 밑둥이 튼실한 고목의 곁에서 어린 나무는 제자리를 지키는 법을 배운다. 가르치는 사람 없이 배우는 사람이 있을 수 없듯 스승의 존재가 얼마나 절대적인지에 대해 새삼 말할 필요가 있을까. 처음 시인에 대한 발표를 하게 되었을 때, 우리는 모두 김억이라는 시인에게로 마음이 움직였다. 그 이유는 시인 김소월과 그 분의 작품이 아직도 남녀노소를 불구하고 시대를 적시고, 감성을 출렁이게 하는 데에 대한 반증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가 없었다면 김소월도 없고, 그가 없었다면 그토록이나 우리의 삶을 풍요롭게 하는 작품도 없었을 것이기에 스승 나무 곁에서 가지를 키우는 어린 나무가 되고픈 심정으로 발표시인을 정하였다.
이제 우리는 우리 문학사에 없어서는 안 될, 그러나 결코 큰 소리를 내지 않았던 뛰어난 문학의 선구자 김억을 만나보려고 한다. 김소월의 스승으로 우리에게 더 잘 알려진 그의 짧은 이름 두 글자에 과연 어떤 의미와 의의가 있는지 지금부터 시작해보도록 하자.
Ⅱ. 본론
(1) 김억의 생애
1896년 평북 정주에서 태어났다. 호적상 본명은 희권(熙權)이고, 필명은 안서(岸曙)이다. 지주 가문의 맏아들이었던 그는 유복한 유년 시절을 보냈다. 어린 시절 서당에서 한문 수업을 받았으며 여덟 살에 결혼하였다. 집안의 반대를 무릅쓰고 남강 이승훈이 세운 오산 학교에 입학하면서부터 그는 신학문 수업을 받게 되었다. 입학 시기는 명확치 않으나 열한 살 무렵이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오산학교를 졸업한 후 그는 일본 게이오의숙(慶應義塾) 문과에 입학하지만, 부친이 사망하면서 수업을 중단하고 고향으로 돌아오게 되었다. 1916년 오산학교 교사로 재직하던 중 제자였던 김소월의 재능을 발견하고 그를 문단에 진출 시켰다.
그는 일본 유학시절 유학생 잡지인 <학지광>에 1914년 창작 시 ‘이별’, ‘미련’ 등을 발표하고 서구 문학을 소개하는 글을
참고 자료
<김억작품집>, 김억중, 형설출판사, 동녘, 2003
<조선문학연구9>, 이봉우, 천지출판, 1999 등 다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