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시론 자료 강독(주요한 최두석)
- 최초 등록일
- 2019.12.26
- 최종 저작일
- 2016.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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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 원문 요약&해제 (1)
2. 원문 요약&해제 (2)
3. 원문 비교&분석 (주요한과 최두석)
본문내용
원문 요약&해제 (1)
자료1. 주요한, 노래를 지으시려는 이에게 (「조선문단」, 1924.1.13)
과거 우리사회에 노래라는 형식으로 된 문학이 있었다하면 대개 세 가지가 있다. 첫째는 중국을 순전히 모방한 한시이다. 둘째는 형식은 다르나 내용으로는 역시 중국을 모방한 시조이다. 셋째는 그래도 국민적 정조를 여간 나타낸 민요와 동요이다. 필자는 세가지중 세 번째 것이 가장 예술적으로 가치가 있다고 본다.
새로운 풍물이 수입되며 문체가 한문의 전제에서 벗어나는 동시에 신체시(신시)가 생겨났다. 신체시의 기원은 <찬미가>에서 볼 수 있다. <찬미가> 다음으로 신시의 형식을 가졌다 할 것이 소년잡지 등에 난 7‧5조의 신체시와 갑오이후에 유행한 창가라고 볼 수 있다. 형식상으로 찬미가와 창가와 일본신체시를 모방한 조선 신체시가 조선의 한시, 시조, 민요와 판이하게 다른 것으로 신시의 효시라고 볼 수 있다.
이에 류암 김여제가 <학지팡>이라는 잡지에 낸 창작시가 신시의 싹으로, 그를 신시의 첫 작가라고 본다. 그 때 당시 류암의 시는 내용이 새롭고 형식에 이르러서도 고유의 격을 파한 자유시였다.
1919년 봄에 동인문예 잡지 <창조>가 동경서 창간되었다. 그 창간호(1919년 2월)에 필자가 <불놀이>이하 4편인가를 시험으로 발표하였다. 동시에 경도에서 발간한 기독교학생회지 <학우>라는 잡지에 <에튜우드>라고 제하고 역시 시험적 작품을 발표하였다. 그 작품들의 내용은 불란서 및 일본 현대작가의 영향을 받아 외래적 기분에 만하였고 그 형식도 격을 깨뜨린 자유시의 형식이었다. 자유시라는 형식으로 말하자면 당시 주로 상징파의 주장으로 자유로운 형식으로 시를 쓴 것이다.
신시운동의 목표로는 첫째 민족적 정조와 사상을 바로 해석하고 표현하는 것이고 둘째는 조선말의 미와 힘을 새로 찾아내고 지어내는 것에 있다.
신시운동의 내용은 첫째, 개성에 충실함이다. 둘째, 조선 사람의 개성에 충실함이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