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의 치수
- 최초 등록일
- 2007.06.28
- 최종 저작일
- 200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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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1. 시작하며
조선 시대의 제사는 하늘 귀신, 땅 귀신, 사람 귀신에 대한 것으로 나뉘는 데, 그 중 가장 큰 비중으로 이뤄지는 하늘 귀신에 대한 제사는 다시 인사(禋祀), 실시(實柴), 초료(樵燎)로 나뉘는 데 인사는 주재천인 호천상제에게, 실시는 해, 달, 별들에게 드리는 제사이며 마지막 초료는 비와 바람, 그리고 인간의 운명을 주관하는 별에게 드리는 제사이다. 보는 바와 같이 제사의 대상은 어디까지나 형이상학적인 것들인데 그 중 유독 실생활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많이 주는 비와 바람이 들어간 것이 눈에 띈다. 비로 생각을 좁혀보면, 임금이 제사를 해야 할 만큼 비가 민심과 민생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는 것이 될 것이다.
우리 중세-근대 사회의 기간산업은 누가 뭐라고 해도 농업이 될 것이다. 농업이 우리 사회의 기간산업인 만큼, 나라에서는 민중들이 효율적으로 농업을 수행하게 하기 위해 국가적으로 여러 가지 지원을 할 필요가 있었는데 그 여러 가지 지원책 중에서 가장 크고 광범위하며 세세하게 수행되었던 것이 치수사업이었다. 중세 한국 치수책의 마지막이라 할 수 있는 조선시대의 치수 정책과 방법을 알아보고, 그 것을 현재의 우리가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생각해보자.
목차
1. 시작하며
2. 치수
I. 치수란 무엇인가
II. 기록 속의 치수
III. 청계천 - 조선시대의 대표적 치수 공사
IV. 중세의 수리사업
V. 조선시대의 치수 도구
3. 토론
4. 끝맺으며
본문내용
I. 치수란 무엇인가
동아새국어사전에서는 (홍수나 가뭄의 피해를 막기 위해)수리시설을 하여 물길을 바로 잡는 것을 치수라고 정의하고 있다. 이것은 저수지를 만들어 물을 저장하거나 인공개천을 만들어서 물이 범람하지 않도록 하는 것을 모두 포함하는 행위다. 중세의 세계관으로 생각해보자면 기우제도 일종의 치수행사로 분류될 수 있을 것이다.
II. 기록 속의 치수
중국의 신화시대라고 할 수 있는 ‘요’임금 시절 신화의 한 페이지를 잡고있을 정도로 치수는 그 중요성이 크게 인식되었다. 요 임금 때의 대홍수에 대해서는 ‘맹자(孟子)’와 ‘서경(書經)’ 등의 옛 책에 기록이 있다. ‘맹자’에 의하면 이때 물이 역행하여 중국 전체에 범람하였고 이 때문에 파충류가 극성하여 사람들은 지상에 살지 못하고 나무 위나 동굴에 집을 짓고 살았다 한다. 이 신화에서 치수의 실패와 성공을 한 부자를 통해 볼 수 있는데, 아비 곤은 둑을 쌓아 물길을 막으려다 실패하고 아들 우는 물길을 돌리는 방법으로 오랜 세월을 분투한 끝에 치수에 성공하고, 그 공으로 요, 순임금을 거쳐 임금의 자리에까지 오르게 된다. 중국에서 치수는 국가의 중요하고 필수적인 일로 생각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우리나라는 어떤가. <환단고기>에서는 ‘정사 50년(B.C.2284년) 홍수가 범람하여 백성이 쉬지 못하니 제(帝)는 풍백(風伯) 팽우에게 치수(治水)를 명하여 높은 산과 큰 내를 정하여 백성이 편히 살게 했다.’고 기록하여 한국 고대의 치수를 짐작하게 하는데, 이 치수는 우의 치수와 같이, 홍수를 막기 위한 물길 돌리기였을 것이다.
참고 자료
-인용 및 참조
<조선시대 서울시장은 어떤 일을 하였을까> 류지원 지음, 한국문원 출판.
<조선의 왕 - 조선시대 왕과 왕실문화> 신명호 지음, 가람기획 출판.
<조선후기 水利學과 水利담론> 문중양 지음, 집문당 출판.
<홍수 예방과 관리> 중앙재해대책본부 엮음.
물포탈 워터 : http://www.water.or.kr
문화재청 : http://www.ocp.go.kr
한국일보 : http://www.hankooki.com
진주형씨 홈페이지 : http://www.hyongc.com.ne.kr
환단고기 부분 : http://www.hyongc.com.ne.kr/kukki/dankun.htm
서울시 홈페이지 : http://www.seoul.go.kr/
청계천 부분 : http://www.metro.seoul.kr/kor2000/chungaehome/seoul/main.ht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