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시본기(神市本記)
- 최초 등록일
- 2019.12.13
- 최종 저작일
- 201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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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신시본기(神市本記)"에 대한 내용입니다.
목차
Ⅰ. 신시본기
Ⅱ. 신시본기의 내용 분석
1) 환웅은 삼신교의로 민족을 통일하였다
2) 민속에 남은 삼신신앙은 모두 신시시대의 것이다
3) 신지씨가 글을 발명하였다
4) 신시의 삼신문화가 중국에까지 뻗어 갔다
Ⅲ. 신시본기의 세계 윤리적 가치
IV. 참고 문헌
본문내용
Ⅰ. 신시본기
<신시본기>란 <택백일사>의 중심을 이루는 책이다. <태백일사>는 근세조선 연산군과 중종 때의 학자인 이맥이 편찬한 책으로, 《환단고기》의 중심을 이루는 부분이다. 우리나라 역사의 원시국가 시대로부터 고려에 이르는 내용을 담고 있다. 여기엔 삼신제오본기․환국본기․신시본기․삼한관경본기․소도경전본훈․고구려국본기․대진국본기․고려국본기가 포함되어 있다. 그 가운데 삼한관경본기에는 마한세가 상․하와 번한세가 상․하가 담겨있다. 특히, ‘소도경전본훈’은 ‘천부경’과 ‘삼일신고’를 실어, 우리 민족의 정통적 종교와 철학 및 문자를 소개하고 있다.
Ⅱ. 신시본기의 내용 분석
1) 환웅은 삼신교의로 민족을 통일하였다 『삼성밀기』에 말하기를 “환국 말기에 다스리기 어려운 강한 족속이 있어 우환이 되었다. 우환은 원주민인 호족과 이주민인 웅족 사이의 갈등으로 비롯되었다. 환웅은 이 두 족속을 화합하기 위해 먼저 삼신교의를 믿도록 권고하였다. 그러나 호족은 이를 듣지 않았고 웅족만 환웅의 가르침을 받아들였다.” 신시란 환웅이 세운 나라를 말한다. 환웅은“새로 나라를 세운 건국자”이다. 환국 말기에 호족과 웅족 사이에 갈등이 생겨 나라가 혼란에 빠졌다. 이 혼란을 진정시키기 위해서는 무력보다도 정신의 통일이 필요하다고 생각한 환웅은 양편에 삼신숭배의 가르침을 권고하고 호족이 환웅의 권고에 응하지 않자 마침내 호족을 제거하기로 결심하고 삼신교의로 민족을 통일하였다.
환웅이 3천명의 무리를 이끌고 태백산으로 내려왔다. 대저 우리 환족은 모두 신시가 이끄는 삼천의 무리에서 나왔다. 후세에 여러 성씨의 구별이 생겼다고 하나 실은 환단 한 줄기의 후예 후손이었던 것이다. 그러니 환웅이 신시에 내려오신 공덕은 당연히 전송하여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선왕과 선민들이 삼신고제의 성지를 가리켜 삼신산이라 함도 역시 이를 후손들에게 전송하여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신시본기」)
참고 자료
이도상, 「단군왕검신화의 역사학적 의미」 『고조선단군학』, 고조선단군학회, 2002,
서영대, 「단군신화의 역사적 이해」 , 『한신인문학연구 제2집』, 2001
문혁. 「환단고기에 대한 사료학적 검토」. 한국학술진흥재단.20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