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신라 관제
- 최초 등록일
- 2007.04.17
- 최종 저작일
- 200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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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신라 중앙및 지방의 관료체제 입니다.
목차
1. 신라의 시대구분
2. 통일신라의 정치제도 정비
3. 9주 5소경
4. 신라 관명 `대등`
본문내용
1. 통일 신라의 정치제도의 정비
삼국을 통일한 신라는 확대된 영토와 인구를 통치하기 위하여 보다 정비된 정치제도를 필요로 하였다. 이에 중대에는 중앙의 정치기구가 확대되고 지방행정 조직도 재편성되는 조치가 취하여지게 되었다.
통일 수 중앙관제는 종래의 주요 행정기구인 執事部를 중심으로 운영되었지만 새로이 右理方府(667).例作府(686) 등의 관부가 설치되고, 기존의 각 관부 에도 많은 관원이 증치 되었다. 이에 따라 신라의 정치기구는 이부에 해당하는 위화부, 호부에 해당하는 창부와 예부 및 병부, 그리고 형부에 해당하는 좌이방부, 우이방부, 공부에 해당하는 工匠府, 예작부 등이 설치됨으로써 6전조직의 체제를 갖추었는데, 이는 신라 정치제도의 진전을 보여주는 것이다. 또한 집사부도 하대에 가면 執事省으로 승격되고 그 장관도 中侍에서 侍中으로 격상되기에 이르렀으니 (829년, 흥덕왕 4) 중시를 시중으로 개칭한 것은 그에 앞서 747년(경덕왕6)에 이루어졌다.
이것은 집사성이 점차 여러 관부를 총관하게 끔 기능이 확대 된 데서 생긴 변화였다. 이에 따라 통일 신라의 중앙정치기구는 집사성 중심으로 확대 정비되어서 운영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당제의 모방에도 불구하고 신라의 정치제도는 독자적인 특수성을 간직하고 있었다. 당의 최고 관부인 3省을 본떠서 집사성을 마련하고 그 장관을 시중이라 하였으나, 신라에서는 단일성으로 그칠 수밖에 없었고 시중의 지위도 낮았으니, 이는 전통적인 상대등의 제도가 존재하였기 때문이었으며, 집사성이 국무총괄의 기능이 약한 것도 이 때문이었다. 또 중앙관직도 당의 6전 조직을 모범으로 하였지만 그대로 실시되지 못하였으니, 가령 관리의 관등을 관장한 位和府의 기능이 당제의 이부와 큰 차이가 있었음은 그 두드러진 예이다. 신라의 관부는 그 격에 따라 ‘省’ 다음에 ‘部’와 ‘府’를 구별하여 설치하였는데, 골품제의 제약에 따라 관리 인사의 일이 적었던 신라에서는 격이 낮은 위화부로 충분하였던 것이다. 이와 같은 신라정치제도의 특성은 귀족세력의 대표인 상대등과 병부 위주의 전통적인 권력구조의 지속과 당제를 그대로 채용할 수가 없었던 신라 사회의 미숙성에 그 원인이 있었다. 시중은 1인이었으나 기타 관부의 장관은 대개 2인이었는데, 이것은 그들이 정치적 존재로 정책결정에 참여하고 실무는 차관인 侍郞, 卿 등 이하 관에게 맡겨져 있었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