견훤과 후백제
- 최초 등록일
- 2006.10.30
- 최종 저작일
- 2006.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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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견훤과 후백제에 관한 리포트입니다.
목차
Ⅰ. 머리말
Ⅱ. 본론
1. 견훤의 출생
2. 견훤의 성장 및 세력형성 과정
3. 후백제의 성립과정
4. 후백제의 발전
(1) 영토의 확장
(2) 경제 정책
(3) 호족연합 정책
(4) 견훤의 대외정책
5. 후백제의 몰락
Ⅲ. 맺음말
본문내용
내가 살고 있는 이곳 전주의 천년 전 모습은 어떤 모습이었을까. 오랫동안 전주에 살면서도 전주의 예전 모습에 대해 잘 알지 못했다. 전주에 대해서 알고 있는 것은 경기전, 조경단 등의 문화재가 남아있고, 풍패지향(豊沛之鄕)이라는 말에서도 보이듯이 조선왕조의 고향으로서 중요시되고 있었다는 것뿐이었다. 하지만 지금으로부터 약 천년 전 9세기말~10세기 전반에 걸쳐 이곳을 중심으로 후백제가 건국되어 한 때 그 맹위를 떨쳤다는 것은 전주의 역사에 대해 소상히 알고자 하는 사람이 아니라면 알지 못하는 사실일 것이다. 그것은 후백제의 역사가 그리 길지도 않았고, ‘패배자’인 후백제의 역사에 대한 잘못된 인식이 심지어 전주에 살고 있는 우리에게도 영향을 준 것이 아닌지 조심스레 짐작해볼 수 있다. 후백제 및 견훤에 대한 현전 유일한 정사(正史)인 『三國史記』에는 엄연한 왕국인 후백제의 역사를 본기(本紀)가 아닌 열전(列傳) 형식으로 서술하고 있어 후백제와 견훤에 대한 삼국사기 찬자(撰者)의 부정적인 역사관이 극명하게 드러나고 있다. 충남대학교 백제연구소,『후백제와 견훤』(서경문화사 2000), p 5
‘역사는 승자의 기록’이라했던가. 이러한 역사 인식은 후삼국을 건국한 견훤, 궁예, 왕건 3인에 대한 일반적인 평가에서도 드러난다. 보통 고려를 건국하여 삼국을 통일한 태조 왕건을 가장 이상적이고 훌륭한 군주의 상으로 평가하고 있는 반면에 견훤이나 궁예는 포악하고 무능한 인물로 폄하하는 경향이 있었다. 하지만 최근의 경향은 ‘승자의 시각’에서 벗어나 객관적인 시각으로 역사를 보아야 하고 그와 관련하여 새로운 연구의 흐름이 일고 있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