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남북조시대
- 최초 등록일
- 2006.10.26
- 최종 저작일
- 20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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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황건의 난으로 후한이 멸망한 후 국면은 위 촉 오 가 대립하는 삼국시대로 접어들었다. 황건의 난에 의해 한제국의 지배는 타격을 받았다. 이 분열된 사회에서 원소와 동탁, 조조와 손견 등이 여탕의 호족과 결합하면서 세력을 넓혀 군벌로서 전국을 분할했다. 212년 조조는 위 왕 으로 봉해져 사실상 새로운 왕조를 개창했지만 220년에 낙양에서 사망했다. 조비가 그 뒤를 이어 낙양에서 선양의 형식으로 헌제의 양위를 받아 위 왕조를 세웠다. 그는 경제적인 재부나 가문에 관계없이 유능한 인재를 선발하는 새로운 관리임용방식인 구품관인법을 시행해 관료를 육성하려 했다. 구품관인법이란 군국의 중정관이 지방의 인재를 가문, 덕행, 재능, 향론을 근거로 중앙에 추천하는 제도이다.
280년 서진이 잠시 전국을 통일했다. 위는 삼국을 주도권을 쥐고 가장 강성했다. 위 왕조의 3대 황제인 명제는 대장군 사마의에게 정권을 맡겼다. 그 후, 사마의의 아들 사마소가 263년에 촉한을 멸망시키고 그 공로로 진왕이 되었다. 진의 무제가 된 사마염은 280년에 오 왕조를 멸망시켜 전국을 통일하자마자 화북을 농업생산의 부흥에 착수했다. 먼저 점전. 과전제라는 토지제도를 실행하였다. 일반적으로 점전은 토지를 점유할 수 있는 한도를 규정한 한전적 성격이 강한 토지제도인 것으로 보인다. 과전은 경작의무를 부과하고 과역을 부담시키는 토지이다. 따라서 과역의 부담이 없는 귀족에 대해서는 과전의 규정이 없었다. 이후 291-306년 사이에 8왕의 난이 일어난다. 8왕의 난은 7명의 제왕이 비참한 죽음을 당하고 혜제도 독살된 후, 306년 동해왕 월이 회제를 세워 패권을 확립함으로써 종결되었다. 8왕의 난은 수습되었지만 이 난으로 오호십육국시대의 막이 열리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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