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한국의 청동기 문화
- 최초 등록일
- 2006.10.06
- 최종 저작일
- 20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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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청동기 문화는 도구를 만들어 쓰는 재료에 따라 붙인 명칭이다. 즉 청동기 시대는 인류가 청동기를 이용하여 도구를 만들어 쓰던 시기를 말한다. 우리 나라에서의 청동기 제작은 기원전 10세기 후반에 이르러 보급되기 시작하였으나 청동기 그 자체의 사용은 그 보다 앞선 시기에 이미 개시되고 있었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 청동기시대라는 용어가 사용되기 시작한 것은 겨우 35여년 전 이다. 해방전 일본 고고학자에 의해 금석병용기가 주장된 후 아무런 비판없이 받아들였었다. 우리 나라에서 최초로 청동기시대를 논한 것은 1957년 발굴된 황해 지탑리 유적이고, 이후 남한에서 1973년 김원용의 한국 고고학개설에서 청동기시대를 설정함으로써 학계에 일반화 되었다. 청동기시대의 개념에 대해서는 학자마다 의견이 다르다. 비록 다른 지역에서 제작된 청동기라고 할지라도 이미 그것을 받아들여서 일부에서 나마 사용하고 있는 시기를 청동기시대로 볼 것을 주장하는 학자가 있는 반면 청동기 주조 기술이 습득된 이후, 즉 주동이 시작된 단계로 용범, 채광유적등 적극적인 증거가 있는 시기로 설정해야 한다는 견해가 있다. 현재 우리나라에서는 전자의 입장을 지지하는 견해가 우세하여 무문토기 문화를 청동기 문화로 간주하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주장에 대해서 무문토기문화와 비파형 동검 문화는 계통적으로 다르다는 이견, 무문토기가 초기철기시대까지 사용되고 용어상 일괄성이 없으므로 청동기 시대를 대표할 수 없다는 이견이 제시되고 있다.
목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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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청동기 문화는 도구를 만들어 쓰는 재료에 따라 붙인 명칭이다. 즉 청동기 시대는 인류가 청동기를 이용하여 도구를 만들어 쓰던 시기를 말한다. 우리 나라에서의 청동기 제작은 기원전 10세기 후반에 이르러 보급되기 시작하였으나 청동기 그 자체의 사용은 그 보다 앞선 시기에 이미 개시되고 있었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 청동기시대라는 용어가 사용되기 시작한 것은 겨우 35여년 전 이다. 해방전 일본 고고학자에 의해 금석병용기가 주장된 후 아무런 비판없이 받아들였었다. 우리 나라에서 최초로 청동기시대를 논한 것은 1957년 발굴된 황해 지탑리 유적이고, 이후 남한에서 1973년 김원용의 한국 고고학개설에서 청동기시대를 설정함으로써 학계에 일반화 되었다. 청동기시대의 개념에 대해서는 학자마다 의견이 다르다. 비록 다른 지역에서 제작된 청동기라고 할지라도 이미 그것을 받아들여서 일부에서 나마 사용하고 있는 시기를 청동기시대로 볼 것을 주장하는 학자가 있는 반면 청동기 주조 기술이 습득된 이후, 즉 주동이 시작된 단계로 용범, 채광유적등 적극적인 증거가 있는 시기로 설정해야 한다는 견해가 있다. 현재 우리나라에서는 전자의 입장을 지지하는 견해가 우세하여 무문토기 문화를 청동기 문화로 간주하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주장에 대해서 무문토기문화와 비파형 동검 문화는 계통적으로 다르다는 이견, 무문토기가 초기철기시대까지 사용되고 용어상 일괄성이 없으므로 청동기 시대를 대표할 수 없다는 이견이 제시되고 있다.
연대와 편년
청동기시대의 개시연대에 대해서는 다양한 가설이 있는데, 이것은 각 학자들의 기준의 관점 차에서 비롯되는 것이므로, 청동기시대에 대한 충분한 연구와 토의를 거친 후에 올바른 연대관을 제시해야 할 것이다.
1-1
청동기시대의 편년은 주로 청동기 유물을 대상으로 하여 그들의 형식변천과 공반관계에 대한 고찰을 기초로 한다. 먼저 가장 대표적인 유물인 동검의 형식분류에 따라 크게 2시기로 구분할 수 있다.
㉠ 요령식 동검 문화 요령식 동검 문화의 연대 특히 그 상한 연대에 대해서는 이론이 많다. 하지만 현재까지의 조사로 기원전 8세기경까지로 추정하고 있고, 하한은 기원전 4세기로 생각하고 있다. 요령식동검 문화는 현 중국의 동북지방인 요령성지역 일대를 중심으로 전개되었던 청동기문화로 기원전 1천년기 초에 성립되어 수백년간 지속된, 한국 초기 청동기문화를 대표하는 문화시기이다.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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