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도 영서 무문토기문화』
- 최초 등록일
- 2020.04.23
- 최종 저작일
- 201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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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강원도 영서 무문토기문화』"에 대한 내용입니다.
목차
1. 들어가며
2. 자연·지리적 환경
3. 영서 무문토기인의 생활
1) 농경문화의 발전
2) 생활도구
4. 영서지역 무문토기문화 주거지
1) 형태에 따른 주거지 구분
2) 단계별 양상에 따른 주거지의 변천
5. 대표적인 영서지역 무문토기 출토유적
6. 나가며
본문내용
1. 들어가며
한국 고고학이 사용하는 삼시기법(三時期法 : Three Age System)의 청동기시대(靑銅器時代)는 그 시작과 종료의 시기와 문화 내용에 대하여 여러 입장이 제시되어 있다. 왜냐하면 청동기시대의 개시시점이 되는 신석기시대(新石器時代)의 종료 시기와 문화 양상이 불분명하고, 청동기시대 종료의 기준이 되는 철기문화(鐵器文化)가 한반도의 북부에 도래할 때 남한은 순수한 청동기문화가 전성기를 유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현재 한국의 청동기 시대는 청동기의 사용 여부보다는 정착농경(定着農耕)의 실시를 기준으로 정의하고 그 시공적인 범위를 규정하는데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즉, 알곡농사와 정착생활의 시작과 무문토기(無文土器)의 사용이 청동기시대의 상한의 기준이다. 하한은 당연히 철기의 사용이 기준이 되어야 하지만, 철기사용의 지역차가 크기 때문에, 순수한 청동기문화를 철기시대로 구분하는 사례로 나타나고 있다. 따라서 청동기시대의 상한(上限)과 하한(下限)을 획일적으로 단정하기보다는 소위 청동기시대와 관련된 문화의 내용을 상세하고 정확하게 복원하는 것이 당면과제이다. 청동기시대는 농경기술이 발달하면서 경작지를 확대하는 등 자연적인 조건을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변화시켜 나갔으며, 이에 따라 사회는 더욱 다양하고 복잡해졌다. 무문토기(無文土器)와 정형화된 마제석기를 사용하던 사람들은 고인돌로 대표되는 무덤을 축조하는 전통을 정착시키고, 청동기라고 하는 당시로서는 최첨단의 기술을 수용하였다. 이에 따라 다양한 시설을 갖춘 마을이 생겨나며, 마을 내부의 갈등을 조정하고 여러 마을을 통합할 수 있는 개인이나 집단도 등장하였다. 이런 점에서 볼 때 한반도의 청동기시대는 역사시대를 여는 근원적인 토대가 형성된 시대였다고 할 수 있다. 이를 토대로 이번 발제문에서는 청동기시대 무문토기문화인들의 농경과 무문토기의 발전, 강원영서지역의 청동기문화유적을 살펴보도록 하겠다.
참고 자료
김권중, 「영서지역 청동기시대 주거지의 편년 및 성격」,『강원지역 청동기문화』2005년 추계학술대회, 강원고고학회, 2005.
강원문화재연구소,『4대강 살리기 한강권역(북한강) 문화재 지표조사 보고서』, 강원문화재연구소, 2009
강원도사편찬위원회,『강원도사』2, 마스터플랜, 20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