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유한성과 범주들
- 최초 등록일
- 2006.05.25
- 최종 저작일
- 200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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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범주는 형식이며, 인간의 정신은 이 형식 속에서 실재를 파악하고 있으며 동시에 형성하고 있다. 어떤 것에 대해서 합리적으로 말한다는 것은 그것에 대해서 범주적인 형식을 수단으로 삼아서 존재의 형식인 “말하기의 방식”을 통해서 말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여기에서 범주는 논리적인 형식과 구별되지 않으면 안 된다. 논리적인 형식은 담화를 결정하고 있지만 단지 간접적으로만 실재자체와 연관되어 있다. 논리적인 형식은 담화가 지시하고 있는 내용으로부터 추상화 된 것이라는 점에서는 형식적이다. 반면에 범주는 내용을 결정하고 있는 형식이다. 범주는 존재론적인 것이며, 따라서 범주는 모든 것 안에 현재하고 있다.
범주들은 존재와 비존재에 대한 그들의 이중적인 관계를 통해서 그들의 존재론적 성격을 드러내고 있다. 이들은 존재를 나타내고 있지만 동시에 존재하는 모든 것이 종속되어 있는 비존재를 나타내고 있다. 범주는 유한성의 형식이다. 유한성의 형식으로서의 범주 그 자체는 긍정적인 요소와 부정적인 요소를 결합하고 있다. 신학적인 물음, 즉 신에 대한 물음의 길을 예비하고자 하는 존재론의 과제는 이와 같은 이중성을 분석하는 일이다. 네 가지 주요 범주들-시간, 공간, 인과성, 실체-을 다룰 때 우리는 각각의 경우에 이들의 긍정적인 요소와 부정적인 요소를 밖으로부터, 즉 세계와의 관계 속에서 다룰 뿐만 아니라 또한 안으로부터, 즉 자아와의 관계 속에서도 다루어야만 한다.
시간은 유한성의 중심적인 범주이다. 모든 철학자들은 시간의 신비한 성격에 의해서 매혹당하면서 무척 당황해 하였다. 시간의 긍정적인 요소를 강조하고 있는 철학자들은 시간적인 과정의 창조적인 성격, 그의 직접성과 역행 불가능성 그리고 그 안에서 생산된 새로운 것을 지적한다. 그러나 어느 쪽도 상대편을 배제한 채 배타적인 강조를 주장할 수 없었다. 현재를 환영이라고 말하는 것은 불가능한 것이다. 왜냐하면 과거와 현재 그리고 전자에서 후자에로의 움직임이 측정될 수 있는 것은 오직 경험된 현재의 힘 안에서만 가능하기 때문이다. 다른 한편, 시간은 그것이 창조한 것을 “삼켜버린다”는 것과, 새로운 것이 옛 것이 되어 사라진다는 것과, 창조적인 진화는 매순간마다 파괴적인 해체를 동반하고 있다는 사실을 간과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존재론은 단지 시간의 긍정적인 성격과 부정적인 성격 사이의 균형을 서술할 수밖에 없다. 시간의 의미에 대한 결단은 시간에 대한 분석으로부터는 유추될 수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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